OUT/詩모음

얼음 도마 / 이정록

휘수 Hwisu 2007. 11. 29. 09:31

1964년 충청도 홍성

공주사범대학 졸업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농부일기> 당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穴居時代> 당선

제20회 김수영 문학상(2001년) 수상

제13회 김달진 문학상(2002년) 수상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문학동네, 1994)

<풋사과의 주름살>(문학과 지성사, 1996)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문학과 지성사, 1999)

<제비꽃 여인숙>(민음사, 2001)

시우화집 <발바닥 가운데가 오목한 이유>(청년정신, 1998)

 

얼음 도마 / 이정록

 

겨울이 되면, 어른들은
얼어버린 냇물 위에서 돼지를 잡았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까지 이어지는 도마가 있었다.
얼음 도마는 피를 마시지 않았다.
얼어붙은 피 거품이 썰매에 으깨어졌다.
버들강아지는 자꾸 뭐라고 쓰고 싶어서
흔들흔들 핏물을 찍어 올렸다.
얼음 도마 밑에는 물고기들이 겨울을 나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노을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핏물은 녹아내려 서녘 하늘이 되었는데
 비명은 다들 어디로 갔나?)

 

얼음 도마 위에 누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돼지가 있었다.
일생 비명만을 단련시켜 온 목숨이 있었다.

 

세상에,
산꼭대기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도마가 있었다

 

시집 <제비꽃 여인숙>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