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철 시모음
흉측한 길
아침부터 그 흰 개는 길을
깨물고 놔주지 않았다
길 옆 화단의 잡초와 시간을
뽑고 있는 노인들은
잠깐씩 그 흰 개를 바라보고
아카시아 꽃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아주 먼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떨어지기 전
향기를 잃은 꽃잎은
쉽게 남들의 일이 되는 법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트럭이 그 흰 개를 밟고 지나갈 때
그 흰 개는 털을 세우고
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잠시 속도를 줄이며
백미러를 통해 흰 개를 확인하는 운전사
거울에 비친 죽음은
거울에 맺힌 상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대의 승용차가 그 흰 개를
밟고, 잠시 갓길에 서서
그 흰 개를 바라보고 있다
그 흰 개의 입은 뭉그러져 있고
터진 옆구리가 길을
삼키기 직전
나는 그 길 건너편
가파른 벼랑을 보면서
장식으로 걸어논
흉측한 길이라고 잠깐 생각했다
좋은 표현인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다
깨진
유리
거지는 모닥불 앞에서 한 장씩 녹아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 세 발짝
너머에서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새를
쫓듯
아이들과 함께 돌멩이처럼 소리
지르고
발을 구를
때마다
뒤돌아보며 도망가던 그를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며 버린
정서를
겹겹이 입고
있었다
허리까지 깊숙이 타들어간
코트에선
참고할 만한 삶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이
어디에서 헐리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모닥불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내가 피워놓은 모닥불이 빨리 꺼지기를 빌고
있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마을 입구에 나왔을
때에도
마을 빈집을 돌며 수십 장의 유리창을
깨고
다시 흑백사진을 뿌옇게 지키고
있는
액자를 깨고 돌아왔을
때에도
일어설 힘을 불 속으로 던지고
있었는지
모닥불은 꺼지지
않았다
저녁이 되면서 그의 몸은 다
녹아내려
모닥불 주위에 젖은 움막처럼
질척거리고
모닥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그의
몸들이
깨진 유리처럼 얼어붙기 시작했다
2002년 제2회 | 안주철 「흉측한 길」외 4편 |
창작과 비평 신인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