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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1 / 민병기 (펌)

휘수 Hwisu 2006. 2. 3. 02:31

신춘문예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민병기(창원대 교수)



1. 신춘문예 제도의 의미와 한계

신춘문예 당선은 화려하고 권위가 있는 등단 절차로 공인된 지 오래다.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매년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각 신문사에 응모한다.
이 제도를 운영하는 신문사가 서울에만 여덟 곳이며, 대구, 부산, 광주, 경
남 등의 지방지까지 합치면 열 곳이 훨씬 넘는다. 98년도 응모 기간 중 한
신문사의 시 분야에만 1만 통이 넘게 접수되었다고 하니, 이 제도에 대한 예
비 문인들의 높은 관심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 제도는 한국 문학의 발전에 진정으
로 기여하고 있는가. 비전문 기관인 신문사가 운영하는 데 따른 문제점은 없
는가. 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매년 많은 석·박사 학위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그 중에 이 제도의 운영과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신
춘문예 당선 소설의 어휘를 분석한 석사 논문 두 편이 고작이다. 평론도 사
정은 비슷하여, 그 해 당선된 시의 경향을 논평한 것이나 당선자와 담당 기
자들의 좌담회 정도가 전부인 실정이다.


연구의 필요성이 높은 데 비해, 이에 대해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는 사실
은 우리의 문학 연구가 실제 작품의 생산이나 유통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
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즉 연구의 성과가 실제 창작자나 독자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연구가 지극히 자족
적인 데 있다. 자족적 연구란 오직 연구를 위한 연구로, 그 사회적 가치가
전혀 없는 연구를 말한다. 이런 연구물은 독자가 전혀 없다. 사회 발전에 아
무런 기여를 못 하는 연구로, 사회에 대해 <닫힌 연구>를 의미한다.


이제 우리의 문학연구도 <닫힌 연구>에서 <연린 연구>로 연구의 패러다임
이 변해야 한다. 사회를 향해 <열린 연구>란 명작의 생산과 유통에 기여하는
연구를 말한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고, 이를 독자가 읽도록 도와주는 연
구이다. 이로써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이 사랑 받는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
으니, 이는 참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연구이다.


<열린 연구>란 쉽게 말해 일반 독자들을 위한 연구이다. 예를 든다면, 독
자들이 책을 선정할 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좋은 작품을 고르는 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가 잘 이루어지면, 책
광고의 비리는 자연 사라질 것이다.


한국은 지나친 책 광고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손실이 크다. 내용보다 투
자한 광고의 액수에 비례하여 책이 팔린다면, 그 막대한 광고비는 모두 독자
의 몫이다. 또 광고를 하지 않는 양서보다 광고를 많이 하는 악서가 오히려
잘 팔린다면, 이는 큰 모순이다. 이런 모순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독자층이
다. 출판사의 상술에 독자도 문학도 지배를 받게 된다.


평론가들도 출판사와 손을 잡고 판매 전략으로 그들의 지식을 은밀하게
제공하게 된다. 각종 문학상도 판매 전략의 상표로 활용되고, 서평이나 문학
관련 기사문의 내용도 <위장된 광고>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문화의 비
리를 바로잡기 위해 <열린 연구>가 참으로 절실하게 요청된다.


과대한 책 광고의 비리를 없애기 위해 신뢰성이 높은 독서 안내서가 필요
하다. 독자층이 신뢰할 만한 객관적인 독서 정보를 담은 책이 계속 발간된다
면, 독자들을 엉터리 광고에 현혹되어 악서(惡書)를 선택하지 않고, 그 정보
에 따라 양서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 연구가 바로 <열린 연구>이다. 그러면
광고에 따르는 비리는 자연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독자들이 믿을 만한 독서 정보 파일을 누가 만드느냐이다. 그것을
출판사가 맡으면, 공정성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만들
곳은 대학뿐이다. 대학에서 독자를 위한 명작과 신간 안내서가 매년 발간된
다면, 책에 대한 과대 광고의 비리는 사라질 것이다.
독서 정보 파일을 한 대학이 맡아 하는 것은 힘들고, 여러 대학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별로 영역과 지역을 분담하여 만든다면, 그 효과가 더
클 것이다. 그 내용을 공개하는 발표 창구로 대학에서 운영하는 사이버 잡
지나 대학의 학과 홈페이지가 이상적이다. 예를 든다면, 경상대 국문학과에
서 개설한 <지리산 글방>이나 창원대 국문학과에서 개설한 홈페이지나 황국
명 교수의 홈페이지 같은 사이버 공간이 바람직하다.


<열린 연구>의 하나로 신춘문예 제도의 의미와 기능을 검토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당선되는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연구 대
상이다. 시의 경우, 당선작 대부분이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 많은 역
대 당선작 중에 독자들에게 애송되는 시가 없다. 이 사실은 신춘문예 제도가
독자 반응이 좋지 않은 작품과 작가를 양산한다는 것은 의미한다.


신춘문예 당선은 문학적 사건은 될 수 있어도, 문학성 그 자체일 수는 없
다. 그것이 동일시 된다면, 문학성은 무의미해지고, 문학성에 대한 독자들의
공신력은 사라질 것이며, 결국 문학은 생명을 잃게 된다. 이는 신춘 제도가
문학의 생명력을 높이기 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매년 신춘문예로 많은 스타들이 탄생한다. 그들 중에는 지금도 찬란한 빛
을 발하는 시의 성좌가 있는가 하면, 곧 어둠 속으로 사라진 유성이 훨씬 많
다.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양자의 작품들을 분석하여 그 성격과 특징을
언론의 속성과 관련시켜 밝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문학과
저널리즘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요, 시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한 기초 연구
가 되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제도의 역사는 길다. 이를 처음 시행한 곳은 동아일보이다. 동
아는 1925년 1월말까지 원고를 모집하여 이듬해 3월 초에 당선작을 발표했
다. 그래서 명칭이 신춘문예가 되었다. 모집 장르는 소설, 시, 동요, 동화
극, 가정소설의 5개 분야였다. 상금은 각분야 1등 1인에 50원, 2등 2인에 각
25원, 3등 5인에 각10원으로 총 750원이었다. 이 해에 부문별로 1등과 2등
의 당선작을 거의 뽑지 않았다. 시 분야에 3등만 2편 있었는데, 그 중 하나
가 김창술의 시[봄]이었다. 다음 해엔 시행되지 않았고, 27년에 김해강 박아
지 등 4명의 시인이 등단했다. 조선일보는 좀 늦게 28년에 시행했다. 첫 해,
'시가' 분야에 7명의 입선작과 8명의 가작이 뽑혔다.
시행 초기에 당선작을 거의 뽑지 않은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원인은 작품의 수준 미달보다 재정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모집 광
고의 화려함에 비해 당선 편수는 빈약했다.


그러나 발표 무대가 열악했던 당시 이 제도는 30년대에 유능한 신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대표적인 시인으로 황순원([우리의 새 날은 피바다에 떠서],
동아, 33)과 조명암([동방의 태양을 쏘라], 동아, 34)과 서정주([벽], 동
아, 36)와 김광균([설야], 조선, 38)과 함형수([마음], 동아, 39) 등이다.
이 제도는 일제 말기 동아 조선의 폐간으로, 시행이 중단되었다가 55년부
터 다시 이어졌다. 두 신문사와 함께 50년대에 한국·서울·경향신문사가 가
담했다. 이어 60년대 중앙과 대한이 합세했고, 뒤에 세계와 문화 그리고 지
방 신문의 확대로, 이 제도는 20세기 한국 문인 등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
다.


이 제도는 역사가 길고, 배출한 문인이 많고, 가장 화려한 등단 코스라는
점에서, 문학 지망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당선을
노리고 있으니, 이 제도의 현재적 의미는 매우 크다. 시행 초기와는 달리 이
제 문학 전문지도 많고, 발표 무대도 다양해진 지금도 이 제도에 대한 문학
지망생들의 관심이 큰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제도가 지니고 있는 장점
때문이다. 이를 다음 둘로 정리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신문이 지니는 대량 전달 효과에서 비롯된다. 현대는 대중 매체의
시대요, 특히 정초 휴일이라는 시기의 매체 효과는 아주 크다. 전국에 배달
되는 신년 특집호에 실리는 작품, 더구나 치열한 공개 경쟁에서 당선된 작
품, 이는 그 자체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둘째는 공모 제도로 경쟁과 심사의 공정성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추천제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추천제는 選者가 사전에 알려져, 그의 문학
적 경향을 따르는 아류가 생겨나 종속관계가 이루어지기 쉽고, 그것이 문단
파벌의 근원이 된다는 결점이 있다. 이에 비해, 신춘문예는 심사위원이 사전
에 공개되지 않아, 인맥 관계에 따르는 부작용이 없다. 따라서 참신하고 우
수한 작품이 뽑힐 수 있으니, 당선자도 작품 자체로 공정하게 인정을 받았다
는 긍지를 가질 수 있다. 이들이 모두 장점이다.


화려하고 공정한 등단 절차로 알려진 이 제도는 과연 완벽한가. 결코 그
렇지 않다. 신문사가 주도하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결점 또한 크다. 신문사
에는 여러 부서가 있다. 문화부는 그 중에 하나요, 문학은 문화부의 일부일
뿐이다. 그 비중도 또한 社內 사정이나 시대에 따라 상당히 가변적이다. 한
겨레나 국민일보처럼 신문사 중에는 이를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전문 문예지나 출판사도 많은데, 굳이 비전문 기관인 신
문사가 작가 배출의 공식 제도를 운영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도 가능하
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전문 기관의 운영에 따르는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