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신발論』에 나타난 마경덕의 시 세계 / 권두련 시인
자의식 남다른 시인의 입장 바꿔 세상 보기
- 시집 『신발論』에 나타난 마경덕의 시
등단작에서 신발을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로 바꾸고, 뒷꿈치 한 쪽이 비스듬히 닳은 걸 보고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 졌으니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다고 남다른 자의식을 드러낸 마경덕 시인이 시집을 냈다. 시집에는 등단작이 보여 주었던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나를 끌고 다녔던 신발(또는 일기장)과 같이 지나온 삶을 통해 내면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편과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와 같이 입장 바꾸어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시편마다 배어 있다.
시집을 열어 보면, 주요한 소재가 ‘집’과 ‘골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 ‘집’은
부스스 머리를 풀어헤친
집이 운다
빗물 고인 장독을 들여다보고
앞마당 잡초더미
봉숭아 한 그루 붉게 터졌다
조랑조랑 꽃을 달고
어리둥절 서있다
바람 한 점
픽, 바지랑대 쓰러지고
놀란 집이 퍼뜩
한쪽 발을 쳐든다
사타구니 뵈는 집
더는 숨길 게 없다고 주머니를
뒤집어 탈탈 턴다
-「폐가」일부
두말 할 것 없이 “사타구니 뵈는 집”이란 그림 한 장을 눈에 박아 넣는 이 시는 알맹이만 빼먹고 껍질만 남은 시인의 내면 풍경을 보여준다. 이 집은 ‘분양을 알리는 현수막과 빛바랜 만국기를 붙들고 어둠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집’과 ‘불법 입주한 어둠이 난폭한 세입자인 집’(「빈둥빈둥 늙는 집」발췌)으로 변이 되고, 다시 ‘지붕에서 쥐로 변한 비둘기 한 마리’가 ‘쪼글쪼글 들러붙는 울음주머니로 끅끅, 마른 눈물을 흘리는 집’(「울음주머니」발췌)으로, “누군가 흙손으로 벽의 주름을 펴고 흙 한 덩이 떼어 척, 구멍을 메울 때 불도장처럼 마음을 찍”(「흙, 벽」일부)는 헐렁하고 아픈 집으로 나타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집들은 시인의 내면 풍경, 그 중에서도 무의식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집들은 목수처럼 나무의 결을 잘 아는 시인을 만나, 내면에 잠겨 있지 만 않고 ‘있는 그대로’ 겉으로
드러난다. 무의식이 의식화 된 것이다. 그래서 지도와 탁본이 되고(「목공소」에서), 목판과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오래된 가구」에서)로
승화되어 재탄생한다.
이런 면은 집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도 속속 나타난다.
골목은 어두웠어
지린내 나는 골목은 깊은 터널이었지
나무 한 그루 없는 담벼락 밑에
고양이 울음이 떨어져 있었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너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어
바람이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머플러는 숨 막히는 내 목을 휘감고
취객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지
돌아보니 등을 보이고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고 있었어
욕설이 발등을 적시는
더러운 밤이었어
개새끼!
-「물이 끓는 동안」일부
이 시는 '실연의 날들'을 그린 시다. 말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는 변심한 남자와 이별하는 마지막 밤, 골목은 고양이의 울음과 취객의 욕설이 발등을 덮는 아픔의 공간이다. “문 앞을 서성이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나와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리기도”(「슬픔을 버리다」일부) 한 과거의 공간이요, ‘누군가 마음을 빠뜨리고 한참을 찾으러 오지 않는 발자국 흉터’(「누군가 골목을 건너갔다」발췌)가 선명한 현재의 골목이다. 또한 ‘조문객 하나 없는 가난한 죽음이 터벅터벅 혼자 걸어 나간’(「조등」발췌) 쓸쓸한 골목이다. 무의식의 흉터인 골목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은 무의식을 의식화한 것이다. 융Carl Gustav Jung은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을 통일하여 완성된 전체를 이루도록 촉구하는 의식의 형상을 ‘자의식’이라고 불렀고, 이 자의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무의식을 깨우치고 그것을 의식화함으로서 잠재된 것을 모두 발휘하여 궁극적으로 의식된 전일의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하였다.
이런 의식화 과정이 원동 에너지가 되어 시인을 흉터 속에서 머물게 하지 않고 골목을 건너게 한다. “구두가 운동화를 껴안고 큰 발이 작은 발을 업고(……)버거운 영혼이 가벼운 영혼을 밟고”(「누군가 골목을 건너갔다」일부) 건너게 한다. 그래서 지금은 그 골목에서 고양이를 휙휙 던지며 논다.
막다른 집에서 시작된 골목이 동네를 돌아다녀요. 막다른 집에서 걸어 나와 구불구불 기어간 골목의 등이 보여요. 집과 집 사이로 용케 피해 다니며 골목은 종일 고양이와 놀아요. 지붕에서 옥상으로 아찔한 난간으로 휙휙 고양이를 던지며 하루를 보내요. 즐거워라,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 골목끼리 고양이를 주고받으며 놀아요.
또 던지려나 봐요. 수채 구멍에 쥐새끼를 풀고 수백 톤의 어둠을 골목에 부려요. 냉장고 음식을 봉투에 싸서 집 앞에 내놓아요. 봉투를 찢고 악취를 끄집어내고 죽은 쥐를 뒤꼍에 던져요. 불안한 눈 의심 많은 귀를 못된 고양이 얼굴에 달고 있어요. 벽을 디밀고 "뛰어 넘어! 골목을 벗어나면 죽을 줄 알아!" 으름장도 쳐요. 막다른 집 골목이 벽을 타고 올라가요. 다시 골목이 시작돼요. 휘익, 고양이가 날아와요
-「골목이 고양이를 키운다」전문
진정으로 자아를 승화시킨 사람만이 자기의 의식을 가지고 놀 수 있다. 비록 “뛰어 넘어! 골목을 벗어나면 죽을 줄 알라”는 가정과 사회의 으름장이 있지만 시인은 이제 수백 톤의 어둠도 악취 나는 음식 봉투도 고양이 던지듯 휙휙 던지며 놀 수 있게 되었다. 융은 자의식이란 의식과 무의식을 합친 나의 전부, 의식에 나타나 있는 일회적이고 특수한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 전부를 의미하는 것이라 했고, 자기구현이란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의 의식화하는 것인데, 자기구현의 핵심은 의식세계 뿐만 아니라 부정하고 싶은 무의식의 전체까지를 있는 그대로의 자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다. 그런 면에서 마경덕 시인은 시로 자기를 구현하고 있다.
시인의 자의식을 대표하는 이 집과 골목은 ‘밤송이/집복헌 우물/수박밭 수용소/조개의 입/성북동 길/달팽이’로 전이되고
‘가방/사막/굴뚝/레이드 총구/얼굴 없는 마네킹/무꽃/맨발/혀/건널목’으로 확장 되어, 자의식과 세계를 연결시키는 통로로 만든다. 詩가 門이
되는 것이다.
문을 밀고 성큼
바다가 들어섭니다
바다에게 붙잡혀
문에 묶였습니다
목선 한 척
수평선을 끊고 사라지고
고요히 쪽문에 묶여
생각합니다
아득한 바다가, 어떻게
그 작은 문으로 들어 왔는지
그대가, 어떻게
나를 열고 들어왔는 지
-「문」전문
이 시는 시인과 세계의 거리를 잘 나타낸 시다. 창문을 열자 바다가 보인다. 보인다는 것은 바다(즉, 세계)가 집안으로 내안으로
들어오는 것, 그 세계에 매료되어 문을 연채 오래 묶여있다. 작은 덩치로 대해를 헤쳐 나가는 목선 한 척이 마치 자신인 듯 눈을 끌어당기다 결국
수평선을 끊고 큰 파도 저 건너로 사라진다. 뒤에 “그대가, 어떻게 나를 열고 들어왔는지”라고 戀詩 냄새를 풍기긴 있지만 이 시는 분명, 세계를
여는 자의 힘겨운 고백이다. “목선 한 척”이라는 것이 단순히 낭만적인 경치를 제공하기보다 목숨을 내걸고 그물질하는 치열한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세계와 만나는 지점도 모성이라는 고통을 동반한 뒤부터다.
죽을 쑤려고 호박을 자른다
뉴질랜드産 검푸른 단호박
자그만 몸뚱이, 어디에 이런 힘이 들었을까
칼날을 물고
텅,
도마에 텅,텅,
온몸을 들이받고
돌덩이 같은 몸이 열린다
반으로 잘린 단호박 자궁
눈부신 속살에
호박씨들 우굴우굴 엉겨있다
손을 넣어 끈끈한 호박씨를 긁어낸다
걸쭉한 피가 묻는다
움푹, 구덩이가 드러난다
세 번이나 도굴 당한 내 몸에도
구덩이가 파였을 것이다
-「단호박 자궁」전문
이 시에서 도굴 당한 몸은 시인의 몸이다. 겉은 검푸르고 속은 빨간 단호박, 더군다나 단단하여 잘 열리지 않는 단호박을 보며 출산할 때의 고통이 생각했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화지향적인 것은 출산 때의 고통과 10개월간의 회임기간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를 배면 좋아하던 것을 끊고 온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한다. 감기가 걸려도 약을 먹을 수 없다. 완전한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 모성이 자의식이 강한 시인의 눈을 타인과 사회로 돌리게 했을 것이다.
마경덕 시인에게 있어 모성은 두 가지다. 「단호박 자궁」을 비롯해 ‘만삭의 무지렁이 촌부’로 그려지는 「토마토」와
‘누르면 물컹한 크림이 빠져나오는/예쁜 빵을 셋 낳고’ 싶어 했던 「바께트」와 같이 자신의 모성체험을 토대로 한 시가 그 하나요, 「마지막
봄」,「그해 겨울」,「고로쇠나무」,「꽃아, 뛰어내려라」등과 같이 부모에게 사랑을 내려 받으면서 그 분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가 그 둘이다. 이
중 부모세대를 바라보는 시에는 안스러움이 담뿍 담겨 있다.
백운산에서 만난 고목 한 그루. 밑둥에 큼직한 물통 하나 차고 있었다. 물통을 반쯤 채우다 말고 물관 깊숙이 박힌 플라스틱 호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둥치에 구멍을 뚫고 수액을 받던 자리. 시름시름 잎이 지고. 발치의 어린 순들, 마른 잎을 끌어다 푸른 발등을 덮고 있었다.
링거를 달고 변기에 앉은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주는 자식놈에게 부끄러워 얼른 무릎을 붙이는,
옆구리에 두 개의 플라스틱 주머니와 큼직한 비닐 오줌보를 매단 어머니. 호스를 통해 세 개의 주머니에 채워지는 어머니의 붉은 육즙肉汁. 오십 년
간 수액을 건네준 저 고로쇠나무
-「고로쇠나무」전문
플라스틱 호스를 달고 있는 고로쇠나무와 링거병을 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어 쉬우면서도 푸근한 시다. 이렇게 부모에 관한 시를 쓸 때는 시적 기교를 쓰지 않고 진솔하게 쓰는 게 이 시인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너무 긴밀하게 비유되는 바람에 시의 여백과 독자의 몫이 줄어들지만 최대한 진솔하게 쓴 것은, 어쩌면 그 분들이 읽어도 이해하기 좋게 쓰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자식에 대한 모성은 각별하면서도 부모에 대한 모성(효성)은 눈을 씻고도 찾기 힘든 이 시대에, 이런 배려와 헤아림이 진정한 모성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이 시집을 읽으면서 눈이 오래 머무는 것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시편들이다. 이 점은 등단작에서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구절에서 시작하여, 호박덩굴을 그릴 때도 제가 허공으로 뻗어가는 게 아니라 “둘둘 허공을 감아쥐고/하늘을 팽팽히 끌어당긴다”(「덩굴은 고집이 세다」일부)로 표현되고, 고양이도 제가 골목을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골목이 고양이를 휙휙 던지고 골목끼리 고양이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다고 표현한다. 주객전도식 도치로 빠지기 쉬운 이 구절들은 “그대는 한 마리 우직한 소,/그대가 가진 네 개의 위장을 알지 못하고/그대를 잘 안다고 했네”(「겨울에게」일부)에 와서 단순한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아니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경지에 이른다. “오 이런,/이렇게 맛없고 질긴 밥은 첨이야”(「불온한 밥」일부) 와 같은 구절도 그렇고, “이젠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요. 도무지 방어를 모르는 제 이름은 더미거든요. 아, 아버지 아무 걱정 마세요”(「더미가족」일부)도 그렇고, 「날아라 풍선」에서 풍선 파는 노인의 마음을 헤아린다던가, 「건널목에서」구걸하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린다던가, 「명퇴야 명태」에서 명퇴 당한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든가, 이외에도 부모세대에 대한 모성을 나타낸 시는 거의 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요즘같이 개성을 앞세워 평자도 알아듣기 힘든 시를 웅변처럼 쏟아내고 그것이 옹호되는 시대에 이렇게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시인을 만난 게 오히려 반갑다.
시인은 입장 바꿔 세상을 봄으로써 세상과 어우러진다. 「불가마 사우나탕」에선 정기휴일을 맞아 친목계를 하는 시장 사람들과
맨살로 어우러지고, 「고래는 울지 않는다」에선 연기 자욱한 돼지곱창집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내들과 술판을 벌인다. 고래뱃속에 있는 자의식을
꺼내 모성으로 감싼 다음, 세상의 무릎에 앉아(또는 세상을 무릎에 앉히고) 질펀한 축제를 벌인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눈에 새로 뜨이는 건, 「바께뜨」나 「더미가족」, 「사냥꾼 레이드」나 「비타민 E」처럼 신선한
소재를 끌어온 점이다. 특히, 자동차 충돌시험 때 상해 예상치를 알려주는 실험용 인형을 소재로 한 「더미가족」은 이전 누구도 쓰지 않은 소재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런 점은 시인이 생물학적 나이에 머물지 않고 젊은 시를 지향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남다른
자의식을 숨김없이 드러내 자기를 구현하고, 입장을 바꿔 세상을 보는 시집, 그 속에 흐르는 모성이 따뜻하다. 앞으로도 따뜻한 시는 따뜻한
대로,「더미가족」처럼 새로운 시는 새로운 대로, 결코 조로하지 말고 좋은 시를 새록새록 쏟아내는 시인으로 남길 기대하며, 벌써 다음 시가
기다려진다
시로여는 세상 (2006년 봄호)
출처, 네블,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