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언어
시와 언어
1. 일반적 의미의 언어
언어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말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일련의 습관으로 일정한 양식에 의하여 발성되는 소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기본기능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약속된 소리를 통해 어떤 자극을 전달하여 일정한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즉 사람 사이의 의식체계 사이에 연결을 가능케 한다. 언어는 사회의 공통적인 약속에 기초하고 있다.
이상섭<문학비평 사전>(민음사,1991), p.56.
언어는 이처럼 사람들 간에 서로의 의사 소통을 위하여 객관성과 보편성을 가지며, 의미 '전달수단'에 먼저 의의를 갖는다.
시는 이러한 언어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언어의 예술이다. 화가-색, 음악가-소리, 시인-언어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따로 규정된 것은 아니나 일반적 의미의 언어와는 달리 쓰인다.
2. 언어의 내포
의사전달 수단으로서 언어는 사회의 공통적인 약속에 근거하여 객관성과 보편성을 갖는 데 이를 언어의 외연(外延)이라 한다. 하지만 언어는 이같이 보편적, 객관적 의미만을 갖지는 않는다. 언어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개별적인 존재이고, 이들은 제각기 다른 체험이나 인식, 감정, 주관을 갖기 때문에 언어는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언어의 사전적 의미, 즉 객관성이 사라지고 개인의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언어의 함축적 의미, 또는 내포(內包)적 의미라 한다.
예) 옷이 날개다.
*리처스는 언어를 과학적 용법과 정서적 용법으로 구분
3. 언어의 문맥성
언어가 갖는 의미는 사용법에 따라 고정 불변의 객관성을 떠나서 새로운 의미를 향해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다. 또한 언어는 별개의 단어들로 따로 따로 놓여 있을 때보다 하나의 문맥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제 기능을 다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언어를 사용할 때 낱말 하나 하나를 그 자체로 따로 떼어 사용하지 않는다. 설사 그런 경우라도 드러나지 않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에 화자와 청자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보통 지시적 언어의 사용도 이러한 문맥 속에서 제 역할을 정상적으로 해 낼 수 있듯이 언어의 내포적 의미도 문맥성을 바탕으로 하여 생겨난다.
예) '눈물에 호소하다.'-인정,
'눈물 없이 빵을 먹어본 사람과는 이야기하지 말라.'-역경, 고난, 고생
4. 언어의 미완성
시인이 개성과 창조성을 발휘하여 시인의 주관적 의미, 즉 언어의 내포적 의미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언어가 1차로 갖는 지시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지시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의미하는 듯한 언어의 내포적 의미의 발생은 이 지시적 언어의 의미를 이해한 뒤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갖는 개관성은 의사 전달 수단의 바탕이 되지만 천차만별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체험과 감정과 사물에 대한 느낌을 제대로 드러낼 수는 없다. 같은 사물이라도 그 사물과 관계되는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지시적 언어는 사람들의 체험내용과 인식을 더러 내는 데 불완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내포적 의미를 통해서 이 불완전성을 보완 극복해 가는 것이다.
언어의 지시적 의미로부터 유추되어 생길 수 있는 내포적 의미들이 무수한 가능성으로 놓여 있을 때 언어의 객관성은 이 무수한 가능성들을 향하여 열려 있는 것이다.
언어의 객관성은 완료된 객관성이 아니라 열려있는 미래형의 객관성이다. 언어적 상상력은 그 이전의 많은 다른 언어적 상상력들의 행위가 그 단어에 내려놓은 거대한 침전물에 짓눌리지 말고 그 단어의 역사에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을 덧붙여하 하는 것이다.
김준오, <시론>(삼지원,1991), p. 37.
언어적 상상력이란 다름 아닌 언어의 내포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인류와 언어가 생긴 이래 언어는 그 수많은 인류들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생긴 의미들을 모두 수용하면서 또 다른 내포를 향하여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의 언어는 새로운 내포를 창조하면서 미완된 객관성의 완성을 향하여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유동적인 언어라 할 수 있다.
5. 언어의 모순성
본질적으로 언어는 구체적인 사물을 추상화하고 지시하는 하나의 기호일 뿐이다. 언어와 사물 사이에는 인간의 사고가 연결된다. 언어 그 자체가 사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가 단순한 기호로서의 존재에서 벗어나 실제 사물과 동일한 일체감을 지향하려고 한다. 언어이면서 언어이기를 거부하는 모순성이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언어가 갖는 제약, 즉 구체적 체험이나 인식된 대상을 추상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과 대상의 거리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인은 대상과의 통일성을 지향한다. 이 원초적인 욕구는 시의 언어들이 실제의 사물과 통일감, 일체감을 획득하려는 것으로 나가게 한다.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에서 소외된, 즉 자연과 거리를 갖게되어 구체적인 존재인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추상적 세계인 의미의 세계에 살게된 사실이 인간 불안의 근원적인 원인이라면 인간이 궁극적으로 동경하고 모색하는 열반의 극락세계란 언어로부터 해방된, 즉 의미의 세계에서 실제의 세계로 귀의한 상태를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 시는 근원적으로 역설적인 언어이다. 왜냐하면 시는 궁극적으로 말해서 언어를 통해서 언어로부터 해방되려는 언어를 씀으로써 언어를 쓰지 않는 언어가 되려는 불가능하고 모순된 노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박이문,<시와 과학>(일조각), pp.121~122.
이렇게 언어가 하나의 의미기호에서 벗어나 자기목적인 사물로 존재하려는 언어의 모순성은 시의 언어가 갖는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이다.
6. 언어의 애매성
시는 언어를 지시적으로 사용하려는 과학적 산문이나 논문과는 달리 언어를 내포적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시의 언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에서 애매성은 문맥의 불확실한 구조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시인이 언어를 내포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의미의 다의성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한다. 애매성의 어원이 '두 길로 몰고 간다'라는 의미가 있듯이, 풍부한 암시성을 필요로 하는 시의 언어에서는 적극적으로 애매성을 이용한다.
그러나 가끔씩 서로 혼동을 일으키는 애매성과 난해성의 용어는 엄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낱말, 문장이 애매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이미 그것의 복합적인 의미, 또는 그 의미의 풍부성을 인식했음을 뜻한다. 즉 그것대로 이미 하나의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낱말이나 문장이 난해하다고 규정할 때에는 아직 그 의미를 판별하지 못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엠프슨(W. Empson)의 <애매성의 일곱 가지 유형>
(1) 하나의 낱말이나 문장이 동시에 다양한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
(2) 두 개 이상의 의미가 시인이 의도한 하나의 의미로 나타나는 경우
(3) 두 개념이 문맥상 동시에 양쪽에 관계되어 하나로 나타나는 경우
(4) 둘 이상의 의미가 서로 모순되게 결합하면서 시인의 복잡한 정신상태를 나타 내는 경우
(5) 일종의 직유로서 직유의 두 관념은 서로 어울리지 않으나, 시인의 시작 과정 중 한 관념에서 다른 관념으로 옮겨감을, 즉 불명료한 것에서 명료한 것으로 나타나 있음을 암시하는 경우
(6) 하나의 표현이 모순되거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경우 독자가 그 시 속에 들어가 스스로 해석해야 할 경우
(7) 하나의 표현이 근본적으로 모순되어 시인의 마음 속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음 을 암시하는 경우
애매성은 언어가 정확성을 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함이 아니라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적 해석을 최대한 누리게 하는 시의 언어가 가진 특권이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7. 보행의 언어, 무용의 언어
언어의 제1차 기능이 서로간의 의사전달이나 개념의 지시를 목적으로 하기 위한 수단에 있다. 이러한 면에서 언어의 형식을 바꾸어도 그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언어형식을 사용하여도 무방하다.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언어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언어와 대체할 수 없는 절대성으로 놓이며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가 된다. 시인은 언어를 선택함에 있어서 언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언어가 갖고 있는 모든 재질들, 소리의 울림까지 살펴서 언어로 하여금 최대한의 가치를 실현하도록 한다. 이러한 언어는 유일성과 절대적인 고유성으로 자기 목적인 존재가 되어 한 편의 시 속에서 자리를 잡게되는 것이다. 발레리는 산문을 보행의 언어라 했고, 시를 무용의 언어라 비유했는 데 무용에서의 동작들이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요,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이 자료는 조태일지음《시창작을 위한 시론》나남출판 73쪽에서 86쪽까지를 요약한 것입니다.
출처, 다음카페, csbsas, 民둥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