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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힘 2 / 마경덕

휘수 Hwisu 2006. 9. 27. 00:39

돌아보면 쓸쓸한 날이 많았다
 

 

 좋아했던 사람에겐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에겐 한번도 마음을 주지 못했다. 잠긴 문 앞에서 떨고있는 나처럼, 어리석은 사내 몇, 열리지 않는 나를 두드리다 돌아갔다.

 

 줄줄이 동생들이 있었고 가난한 부모가 있었고... 어쩌면 누굴 좋아한다는 것이 내겐 사치였다. 사치야.. 사치... 그렇게 마음을 베어버리고 밤새 나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나에게,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  쓸데없는 일에 감정을 낭비하지 마. 값싼 눈물을 흘리지 마. 밥 잘 먹고 일도 잘하는 너를 내가 많이 많이 사랑해...

 

 사랑하는 나에게

 너는 참 용감해. 그 긴 가을 잘 견디었다. 그렇게, 겨울도 나고 봄도 나고,  할 수 있지? 그래

 그렇게 또 한 해가 갈 거야. 연탄 아궁이에 물이 차 불을 못 피워도 겨울이 가고 또 봄이 올 거야.

 

 자취방에 쪼그려 앉아 일기장에 적었던, 나에게 보낸 편지들... 쓸쓸한 날이 많았다. 몇 해를 기다려도 끝내 한 통의 편지도 오지않았다. 기다림, 그저 막연한......죽음같은. 썩은 시체같은, 숱한 기다림......

 

 10월은 왜 그리 더딘지, 코스모스가 어서 지기를 기다렸다. 코스모스. 그 무엇보다 아프게 철렁, 가슴으로 가을이 왔다. 목동 그 단칸방 창문 앞 코스모스가 팔랑팔랑 나비떼처럼 날아올랐고, 가을은 늘 혼자 절정이었다.

 

 돌아보면 참 쓸쓸한 날이었다. 기다림으로 아팠고 슬픔의 힘으로 살아졌다. 살아야만 했다. 걷고, 걷고 걸어가며 생각했다. 침침한 골목, 불 꺼진 빈방,  막막한 젊음.

 난초잎 같이 새파란 젊음은 아름다운 시월에 가장 참혹했다. 해가 가도록 그는 한 통의 소식도 주지않았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였다. 값만 후하게 쳐주면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고....  나는 어리석어서 사랑은 목숨같은 거라고 믿었던 나는 도무지 어리석어... 묵은 편지를 태우고 팔려가는 사랑을 바라만 보고, 나는 참 어리석어서,...말없이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던, 돌아보면 그립고 서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