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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힘 1 / 마경덕

휘수 Hwisu 2006. 9. 24. 02:20

슬픔의 힘 1

 

  이맘때면 우리 집 옥상에서 비둘기가 운다. 지붕을 타고 흘러내린 쇤 울음이 어찌나 절절한지 나를 차버리고 돌아선 그 첫사랑이 생각나고 다 늙은 여자가 별안간 스물이 되어 훌쩍거린다. 시간은 흘러도 추억은 늙지 않는다.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을까? 지금도 이렇게 마음이 끓는데, 눈물이 뜨거운데 어떻게? 기억은 질긴 명함처럼 찢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오래된 추억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린 미루나무처럼 한 줌 바람에게도 파닥파닥 배를 뒤집어 보이던, 그 풋풋한 스물을 나는 잊지 못하는 것이다.

 


  시어머님이 직장암으로 입원한 병실에 식도암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이 말 한 마디 못하고 종일 멀뚱멀뚱 누워 계셨다. 옆구리에 깔때기를 달고 끼니마다 묽은 죽을 받아 드셨다. 며느리의 투박한 손이 깔때기에 주르르 미음을 쏟아 보내면 식사는 끝이 났다. 깔때기는 할머니의 입이었다. 젊은 며느리는 종일 옆 환자와 수다를 떨었고 환자 옆에서 기름 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금 간 몸에 플라스틱 입을 달고 살아야하는 그 노인의 입은 오래 전에 폐쇄되었다. 아름다운 꽃을 꽂던 그 꽃병은 구멍이 막혔다. 바라보면 깡마른 노인의 조용한 눈이 서러웠다.

 비닐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시어머님도 슬펐고 식탐이 넘치는 수다스런 그 젊음도 슬펐다. 병원을 걸어 나오면 하염없이 벚꽃이 휘날리고, 나도 울컥 지고 있었다, 

 


  아직 눈물이 남아있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옥상에 올라 저녁하늘을 바라보면 슬프고 행복하다. 맑은 밤하늘은 환하고 아득하다. 깊은 바다처럼 검푸르고 구름은 희디희고 저녁 새 한 마리 정처 없고, 나는 일엽편주가 되어 어디론가 떠가고 목덜미의 바람은 서늘하고, 그래서 행복하고 외따로 슬프다.

  알맞은 슬픔, 잘 데워진 슬픔, 이 좋다.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린 지 오래, 쓸쓸해서 시를 쓴다. 그 힘으로 시를 쓴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