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채우지 않는 공간 / 김영주
채우지 않는 공간 / 김영주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따사로운 하오. 감미롭게 흐르는 음악에 번잡스러운 상념을 가라 앉히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고요한 집안에 홀로 남아 빈 공간이 더 많은 방안을 둘러보니 행복하다 소유물이 눈에 띠지 않으니 무심에 들 수 있는가 보다. 정신과 육체가 참으로 평화롭다. 잔잔한 강물 위에 나룻배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고대광실 호화롭게 꾸며 놓은 안방에 앉아 호기를 부리는 여인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다. 북적거리던 식구들이 하나 둘, 집을 떠나 버리고 나자 작은방 하나가 비었다. 내 방을 갖고 싶었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그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볼 수 있고,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었다. 밤잠을 설쳐가며 방 꾸밈에 골몰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집기를 들여와 격조있게 꾸며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모든 욕심을 버리고 평소 바라던 내 취향대로 꾸미리라 마음을 정했다. 너절하게 늘려있던 가재도구를 치우고 책이 가득 꽂혀있던 높은 책장을 반으로 나누었다. 시야의 폭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사면의 벽은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지를 바르고 누르스름한 장판을 깔았다. 곁에만 가도 등이 시릴 것 같은 말간 유리창에다 격자 무늬종이를 덧바르고, 햇볕에 잘 바래어진 광목천으로 커튼까지 해 달았다. 순박했던 고향집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몇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책장과 이불을 얹어둘 나지막한 서랍장이 전부인 단출한 방안 살림살이다. 남들이 보면 차라리 서글프다 생각하련만,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꽉 채워진 것보다 허허할 정도로 비어있는 방안에 누워, 물질의 지배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을 느껴서인 것 같다. 이렇듯 인간관계에서도 너무 완벽하여 틈새가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러더러 여백이 엿보이는 사람이 마음 편하게 여겨진다. 대개의 사람들이 유(有)를 소유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이 아니던가.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버린 방안을 둘러보며 행복해 하고 있음이니 세상의 흐름과는 상반된 덜 여문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외면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유형의 겉치레보다, 내면에 숨어있는 무형의 아름다움에 더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닐까. 내 삶이 어느 때보다 향기롭고 신성해 보인다. 인도의 수행자들은 명상공부를 하면서 철저한 무소유를 자랑으로 삼는다. 뼈만 남은 앙상한 육체와 보자기를 걸친 듯한 옷차림,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 전부인 삶이면 족한 그들이다. 가난한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그들에게 물질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영적인 깊이를 더 중요시하기에, 생명이 유지하고 있는 한 명상에 잠겨 깨달음을 얻으려하는 그들의 얼굴은 평화스럽기 그지없다. 부(富)의 가치기준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고(苦)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로운 경지에 도달해 있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행, 불행을 부에서 얻으려 하지 않고, 무소유를 철칙으로 여기는 그들을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그래서 나도, 때로는 그들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은 마음으로 가급적 소유의 폭을 줄이려 노력해 보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평소 염원해 오던 일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근래 들어 자주 한다. 삶의 곳곳마다 배어있는 욕심을 버리고, 흙 냄새를 맡으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은 것이다. 산골에서 자란 탓인지 어린 시절을 보낸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을 잊지 못해서다. 지금에사 그토록 맑고 아름다운 심성은 불가능하더라도, 인간의 본향인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귀소본능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순수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물빛 같은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콘크리트 회색도시를 떠나, 자연의 색감이 충만한 산야에 묻혀 산인(山人)처럼 살고자하는 것도 하나의 욕심이런가. 설혹 꿈으로 끝난다고 한들 그의 갈망은 언제까지나 버리지 못할 것이다. 채근담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여유를 가지고 살면 삼간초옥에 살지라도 천지자연의 화평한 기운을 느껴 안락하게 살게되며, 보리밥에 명아주국을 먹는다 해도 인생의 담박한 맛을 느낄 수 있으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록 이와 같이 청빈한 삶을 살아가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자주 마음 쏠리는 것은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 탓일까. 시골의 고즈넉한 밤의 정취가 그립고, 맏며느리의 무거운 일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니 말이다. 아마 내 삶의 푸르른 생장기를 삭막한 도심에서 그대로 보내어 버리고 말 것 같은 조급증 때문이 아닌가 한다. 헐벗은 겨울나무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넘나드는 계절이면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방향감각 없이 튀는 삶의 파편들에 치어 상처투성이로 변한 영혼을 이제는 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기도 하다. 아울러 가진 것 다 내어주고 비록 소유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무심할 수 있는 마음이었으면 싶기도 하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 보다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채우지 않은 공간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삶의 참 맛이 물질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서 비롯됨을 새삼 자각해선가 보다.
출처 : 블로그 > 거울 | 글쓴이 : 거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