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얼음물고기 / 김명인
얼음물고기 / 김명인 탁자 사이를 갈라놓은 수족관을 한 채 얼음 덩이로 본 것은 결빙에서 방금 깨져 나온 듯 은빛 투명한 물고기들이 빙하 속에 산다는 무슨 어족으로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얼음 속을 헤엄치며 물고기들 식은 체온을 견뎌내는지 움직임이 거의 없다 겹겹이 불빛을 껴입은 비늘들만 눅눅한 실내 반짝거리게 닦아낼 뿐 얼음물고기 아가밀 뻐끔거리면 수족관 안쪽으로 뿌옇게 물무늬가 서린다 투시되는 내장 속 무지개의 말들 막 쟁여지는지 어떤 소리라도 금세 얼어붙는 빙점 아래인 듯 가끔씩 기포들이 피어오른다 그 언저리에 얼음물고기가 넓혀놓은 상상의 자리가 있음을 나는 느낀다 저 물고기 빙하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 새파로 출렁거리는 내 삶과는 너무 멀다 오지 않을 친구를 오후 내내 기다리며 끓어올랐던 신열 삭여내려면 스스로 얼음물고기라도 한 마리 지어보는 것 그리하여 심해의 침묵이 얼음물고기와 놀게 한다 지금 단단해진 생각 속으로 스미며 얼음물고기 헤엄치고 있다 나도 처음엔 얼음의 한 무늬인 줄 알았다 얼음물고기라고 왜 불의 舍利가 없겠는가 금강석의 차가움으로 오래 단련되어야 하는 질문을 우리가 미처 떠올리지 못할 뿐 그러므로 저기 얼음물고기가 있다 한들 얼음의 경계를 벗어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거듭 물어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어떤 흔적도 제 몸에 새겨두지 않으므로 얼음물고기 저렇게 투명하고 고요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위안의 말들에 사무치므로 대기에 스치는 순간 녹아버리는 운석이 되더라도 우박을 헤치며 꽁꽁 언 몸을 끌고 입김 사이로 오는 것이리라 녹은 물고기 이제 얼음 호수로 돌아가지 못한다 넘치도록 흘러내린 빙하 물고기떼를 이끌고 가버렸는지 수족관에는 몇 마리 작은 열대어만 맴돌 뿐 어디에도 얼음물고기 없다 상상의 테두리에 닿는 순간 저를 녹여서 얼음물고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