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스크랩] 송재학/이별이 떠난 자의 몫만이 아니라면외
휘수 Hwisu
2006. 4. 15. 11:04
송재학 시인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음시집'(88년) '푸른빛과 싸우다'(94년)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97년) '진흙 얼굴'(2005년)
▶김달진문학상(94년)
▶미당문학상 후보작 '붉은 기와' 외 8편
이별이 떠난 자의 몫만이 아니라면 / 송재학
어둔 골짜기마다 눈이 있다
조금씩 녹고 있겠지만
햇빛 비치는 밝은 골짜기에도 눈이 있다
아직 사라지지 못하는 잔설의 봉제縫製에는
어김없이 네 발자국이 있다
우리가 숨쉬었던 횡경막 사이에서도 눈은 금방 녹지 못한다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있듯
숨쉴 때마다 뿌리까지 아픈 늑골이 있다
앙다문 송곳니 같은 잔설들이 녹아서 없어지는 등燈이라면,
문득 산비알로 흩날리는 눈보라가 네가 말하려는 슬픔이라면,
아롱거리는 햇빛은 네 평화라고 짐작한다
<시안> 2006 봄호
자연의 형상 통해 너라는 인물을 유추하고 있군요. 어둔 골짜기/밝은 골짜기, 눈보라/햇빛 같은 비유의 이원적인 구조로 비의를 만들어갑니다. 이별은 잔설의 봉제 속에서도 '어김없이' 네 발자국을 발견하게 하고, 심지어 횡경막 사이에서도 눈이 녹지 않는군요. 그래서 이별은 떠난자의 몫만이 아닌 남겨진 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슬픔은 평화와 함께 공존하니 이 마음의 무늬는 더 짠합니다. 송재학 특유이 자연과 인간의 내부의 결합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뿌리까지 아픈 늑골, 체험 해보셨습나요 -시평 손진은-
붉은 기와 /송재학
피렌체의 지붕은 붉은 기와, 죄다 붉은색이니까 색감이 흐려져서 흰색의 얼룩이 생긴다 붉은색은 홍채의 북채색이다 석조 건물에 박혀 차츰 희미해지는, 햇빛이 쏘아올린 화살촉 일부는 아직 파르르 떨고 있다 그런 건물은 3층까지 어둡다 햇빛 때문에 길이 더 좁장해진 거와 다르지 않다 가령 바닥도 돌인 골목길을 몇 시간쯤 걸었다면 햇빛을 짓이긴 발바닥은 부르트는데, 그런 싸움의 흔적이다. 햇빛과 싸우지 않으려면 햇빛처럼 강렬해야 한다면서도, 붉은 기와들은 종일 하품한다 게을러지기 위해 눈부신 햇빛 속에 가만히 있어본다 손톱에서부터 차츰 녹아가는 육체가 있고, 그건 내 마음이나 또 무언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붉은 기와란건 햇빛에 바짝 구워진 물상이다
소나무라는 짐승/송재학
나무가 토해내는 모래의 잎들이 까칠까칠하다
전기톱날이 갈당갈당한 목이 아니라
이빨인 옹이에 박히면서
밀도살꾼 형제의 후회가 시작되었다
단단한 수피 속의 짐승은 음전했지만
톱밥이 순교하는 피처럼 허옇게 튀면서
빗줄기마저 우왕좌왕이다
겨우 몸통을 넘기니까 갑자기 조용하다
너무 이쁜 짐승을 잡았네, 아우마저 심상해했다
무덤 주위가 정리되니까
소나무가 제 몽리면적을 포기했는지 앞이 잠깐 밝아졌지만
어딘가 깜깜해진 것도 알겠다
육신을 뺏긴 놈이 여기저기 똥을 눈 듯 송진 냄새가 진하다
사람의 안에만 짐승이 도사린 것은 아니라는 하루!
** 출처 -『현대문학』 (2005. 12월호) 에서.
튤립에게 물어보라 - 송재학
지금도 모짜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튤립, 어린 날 미술시간에 처음 알았던 꽃
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던 꽃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짜르트이다
리아스식 해안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짜르트와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튤립에게 물어보라.
버들강아지 / 송재학
버들강아지에는 하늘거리는 영혼이 있다 봄날을 따라다니며 쫑알거리는 강아지의 흰 털도 버들강아지와 같은 종족임을 알겠다
한 영혼을 음양이 나뉘어서 하나는 어둔 땅 아래 뿌리를 가져 식물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어둠을 뇌수 안에 가두어 강아지처럼 돌아다니게 한 것이다
- 시집 ‘기억들’ (세계사) 중에서
끌끌, 개울가 버들강아지와 마당귀 멍멍 강아지가 같은 견공(犬公)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손가락 한 마디만한 버들강아지 털 부슬부슬한 게 영락없는 강아지 꼬리로구나. 한데 강아지는 자라서 개가 되지만 버들강아지도 자라서 버들개가 되는가? 꼬랑지는커녕 콧구멍도 닮지 않은 땅강아지는 어째서 땅강아지인가?
입춘이 지났지만 봄기운보다 북풍이 얼얼하다. 냇가의 버들강아지 또한 아직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하다. 툰드라의 봄날, 에스키모인들이 가장 먼저 따먹는 것이 버들강아지란다. 생으로도, 튀겨서도 먹는데 비타민이 풍부하다.
한 영혼이 나뉘어 식물과 동물이 되었구나. 여름철 삼복더위엔 동물성이 인기지만, 봄날 갯가엔 식물성 강아지 꼬리가 지천이다. < 반칠환 시인>
누에/송재학
아마 내 전생는 축생이었으리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린다면 하루아침에 나는 누에로 되돌아가버릴
지 모른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강변의 야산이 친애
하는 벌레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러고 보니 잠들면
나는 늘상 몸을 뒤척이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게
다가 고기를 멀리하고 나무 그늘의 통통한 물살에
온몸을 자주 맡겼다 잎맥을 거슬러가는 애벌레의
날숨에도 내 생로병사가 느껴진다 실크로드에 병
적으로 집착한 것도 수상하다 아니다 고백하자 5
령이라는 잠을 자고 나면 누에는 이승과 저승의 해
안을 가볍게 날아드는 나비, 더 고백하자 그 나비
의 날개라는 반투명이 내 후생임을
* 기억들
귀 /송재학
달포 전부터 귀에서 들리는 소리, 달가닥달가닥 조심스럽다 새벽에 여는 창문처럼 갑작스럽고 미세하게 시작했다 귀지일 거라는 생각에 도리질을 한 건, 수면에 번지는 파문이 귀를 중심으로 자꾸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냥 두기로 했다 걸으면 꼼지락거린다 달가락거린다 머리를 흔들면 서랍이 쏠리는 것이다 마치 누가 서랍을 들쑤시며 무언가 찾는 느낌이다 암내를 풍기는 서랍이 튀어나오려 한다 속수무책, 내 귓속에서도 살림이 따로 차려지나 보다 나만이 눈치챈 지구축의 기울어짐! 귓바퀴 안쪽 수초가 자라 몸이 헝클어지는 이유에 골몰한 사이 소리는 시나브로 없어졌다 서랍을 뒤흔든 힘이 바늘구멍 너머로 사라졌나 보다 저절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무슨 힘이 서랍을 열고 닫았을까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낸다[송재학]
1
강물이 합수하기 전 큰소리 낸다
철로와 길과 강물이 함께 가면서
먼저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상류에서 너가 기어이 강폭을 좁히기 때문이다
은결든 너는 폭포와 살여울을 실어보낸다
기우뚱 강이 난간을 놓치고
돌아갈 길 할퀴면서 비가 온다
이미 산그림자를 베어문 물살이 거칠다
너가 거슬러가면 강물은 급하고 높아진다
너와 부딪친 물굽이를 핑계로
강은 범람을 시작한다
팔 없이 떠내려오는 저 뗏목들
울음 없이 떠내려오는 퉁퉁 불은 부음들
2
무릇 사물이란 평정을 잃으면 소리를 내는 법이다. 초목은 본래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흔들어 소리를 내게 하고 물도 본래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어 소리를 내게 하나니, 물이 뛰어 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격랑케 한 것이고 빨리 흘러가는 것은 무언가가 가로막기 때문이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뜨겁게 하기 때문이다. 금석도 본디 소리가 없지만 무언가가 때려서 소리나게 한다.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부득이한 경우라야 말을 하게 되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요 통곡을 하는 것은 서러움 심정이 있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불평이 있기 때문이다.*
*이병한 편저, <<중국고전시학의 이해>>(문학과지성사, 1992), 당나라 시인 한유의 글<送孟東野序>에서 大凡物不得其平則鳴……에서 인용
출처 : e 시인회의
글쓴이 : 피닉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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