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민들레, 활짝 웃다
서울로 가는 아들놈을 공항에 데려다 주고 나서 대낮임에도
사라봉으로 향했다. 한 이틀 운동을 거르고 컴 앞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몸이 개운치 못해서이다. 별도봉을 한 바퀴 돌고 갈 요량으로
오솔길에 들어섰는데, 하늬바람 의지가 되는 길섶 양지녘에 노란 민들레가 눈에 띈다. 그래서 그런지 보리밭도 훨씬 더 푸르러
보인다.
한두 송이가 아니다. 벌써 씨가 익어 동그랗게 된 것도 있다. 그
동안은 해가 없는 저녁이나 아침 일찍 왔기 때문에 이 녀석들을 못 만난 것이리라. 그런데 이 녀석들은 토종이기나 한 걸까? 아무리 제주가
따뜻하다 해서 겨우내 피어대진 않았을 텐데. 아무려면 어쩌랴 하고 운동을 끝내고 국립제주박물관 뜰에 가서 오후의 햇살을 담뿍 받은 민들레를
찍었다.
민들레는 길섶, 혹은 보도 블록이나 시멘트 포장 옆에서 자주 보고, 가끔은 사람의 발길에 그 잎이 뭉개져 있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상큼하게 피기 때문에 아무래도 서민들의 이미지를 대변해 주는 꽃이다. 꽃을 찍으면서 너무 초라하고 작은 잎을 보고 이런 몸집에서 오늘 같은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그 오뚝이 같은 힘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이 민들레처럼 올해도 건강 하라고 전국의 독자들에게 보냅니다.
* 더욱 푸르러진 보리밭
♧ 민들레(Mongolian dandelion)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들판에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 줄기는 없고, 잎이 뿌리에서 뭉쳐나며 옆으로
퍼진다. 잎은 거꾸로 세운 바소꼴이고 길이가 20∼30cm, 폭이 2.5∼5cm이며 깃꼴로 깊이 패어 들어간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털이 약간 있다.
꽃은 4∼5월에 노란색으로 피고 잎과 길이가 비슷한 꽃대 끝에
두상화(頭狀花 : 꽃대 끝에 꽃자루가 없는 작은 꽃이 많이 모여 피어 머리 모양을 이룬 꽃)가 1개 달린다. 꽃대에는 흰색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지고 두상화 밑에만 털이 남는다. 총포는 꽃이 필 때 길이가 17∼20mm이고, 바깥쪽 총포 조각은 좁은 달걀 모양 또는 넓은 바소 모양이며
곧게 서고 끝에 뿔 모양의 돌기가 있다.
봄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꽃피기 전의 식물체를 포공영(蒲公英)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열로 인한 종창·유방염·인후염·맹장염·복막염·급성간염·황달에 효과가 있으며, 열로 인해 소변을 못 보는 증세에도 사용한다. 민간에서는 젖을 빨리 분비하게 하는 약제로도 사용한다. 한국·중국·일본에 분포한다.
* 바다도 더욱 부드러운 빛을 흘리고
♧ 민들레 / 정군수
흙과 자갈과 모래밭에서
네 땅과 내 집을 가리지 않고
들풀과
뿌리를 섞고 살아간다
향기를 뽐내지 않고
들꽃과 함께 향기 불러내어
풀 포기로 살아간다
목숨은 바람에 실려
밟혀도 가난하지 않은 노래
금빛 동공으로 피어나
토담집에 불 밝힐
작은 꽃
태양의 신화도
해바라기도
되지 못하고
낮은 자의 발끝에서
얼굴을 씻고
흙의 향기로 살아간다
♧ 민들레 / 김명희
너도 길바닥에 나앉았구나
이빨 빠진 청춘과
샛노란 추억의
갈림길에서
구름 한 장 끌어다 덮고
용케도 참고 있구나
보도 블록 틈새라도
등때기 붙일 수 있어
행복하다
고개 끄덕이지만
흘러간 어둠과 눈물
헛발로 맴돌지 않도록
뿌리째 신경통 앓는
봄볕 무릎 사이
하얗게 흔들리는
꽃이여
♧ 제주 민들레 1 / 고정국
몸집 가벼워
네 씨족은
흩어져야
남느니
문득
바람 멎으면
더
불안한
제주 사람들
파르르
목 줄기 붉도록
마른기침
참았느니.
♧ 민들레 / 최동현
먼 산엔 아직 바람이 찬데
가느다란 햇살이 비치는
시멘트 층계
사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나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황홀한 생각에 잠긴다
무슨 모진 그리움들이 이렇게
고운 꽃이 되는 것일까
모진 세월 다 잊어버리고
정신 없이 살아온 나를
이렇듯 정신 없이 붙들고 있는 것일까
작은 꽃 이파리 하나로도, 문득
세상은 이렇게 환한데
나는 무엇을 좇아 늘 몸이 아픈가
황홀한 슬픔으로 넋을 잃고
이렇듯 햇빛 맑은 날
나는 잠시 네 곁에서 아득하구나
♧ 민들레 / 이경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꽃송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둘러앉아
둥글고 낮은 한 생애를 피워낸다
노랗게 화장한 얼굴들 뒤로
젖은 거울 한 개씩을 숨기고
원무를 추는 시간의
무희(舞姬)들
깊은 바람을 품고 사는 꽃들일수록
낮은 땅에 엎드려 고요하다
한 계절의 막이 내리고
텅 빈 무대 위에서
화장을 지울 때면
삶이란 늙은 여배우처럼 쓸쓸한 것
무거운 욕망들을 게워낸 무희들은
하얀 솜털 날개 속에
부드러운 씨앗들을
품고
허공으로 가볍게 솟아오른다
허공 속에서 바람과 몸을 섞고
바람의 아기들을 낳는다
오, 깃털처럼 가벼운
죽음에 매달려
다시 지상으로
탯줄을 묻는
삶, 무거운 꽃
♧ 민들레 뿌리 / 도종환
날이 가물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때가 되면 햇살 가득
넘치고 빗물 넉넉해
꽃 피고 열매 맺는 일 순탄하기만 한 삶도 많지만
사는 일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치 않아
어느 해엔
늦도록 추위가 물러가지 않거나
가뭄이 깊어 튼실한 꽃은커녕
몸을 지키기 어려운 때도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들판을 떠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삶의 반경 절반으로 줄이며
떨어져나가는 제 살과 이파리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다
겉보기엔 많이 빈약해지고 초췌하여 지쳐 있는 듯하지만
그럴수록 민들레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남들은 제 꽃이 어떤 모양 어떤
빛깔로 비칠까 걱정할 때
곁뿌리 다 데리고 원뿌리를 곧게곧게 아래로 내린다
꽃 피기 어려운 때일수록 두 배 세 배 깊어져간다
더욱 말없이 더욱 진지하게 낮은 곳을 찾아서
* 청둥오리 한 쌍 연못에서 움직임이 활발하고
♧ 민들레 꽃 / 조지훈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 꽃 한 송이도
애처럽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인가
소리쳐 부를 수는 없는 아득한 거리에서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리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 동무 생각 / 이은상 시, 박태준 곡 / 서울 모테트 합창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