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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학 이야기 - 詩는 어떻게 쓸 것인가 17

휘수 Hwisu 2006. 1. 17. 20:08
 

2. 그림 그리기를 통한 시쓰기 시의 회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편의 시를 읽고 그 시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방법은 역으로 시 창작을 할 때,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이 쓴 시의 시어와 분위기가 그림 곧 영상으로 바꾸어지는가를 확인해 본다. 예를 들어 1) 꽃이 피었다 2) 빨간 꽃이 피었다 3) 빨간 장미꽃이 피었다 4) 이슬 맺힌 빨간 장미꽃이 피었다 5) 벌들이 잉잉거리는 빨간 장미꽃 과 같은 구절에서 영상으로 가장 선명한 것은 4와 5번이 된다. 이 중에서 4번은 시각적이미지만이 드러나고 있는데 비하여 5번은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적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보다는 2가, 2보다는 3이 구체적이다. 따라서 이미지가 가장 나타나지 않는 것은 1번 '꽃이 피었다' 임을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구절은 표현했다기 보다는 추상적 진술에 머물고 말아 시의 이미지를 드러내지 못하고 만다. 학생들의 시 쓰기는 바로 여기서 판가름 나고 만다. 자신의 생각을 쓰긴 쓰되 표현되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드러내는 시 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추상적 어휘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추상적 진술에 머물고 만다. 과연, 내가 쌓은 탑의 모양은 온전한 것인가 처음 내딛는 발자국 주위엔 사랑의 미소가 뿌려져 있었다 따뜻한 사랑과 밀어(密語)를 먹고 자란 내 마음의 탑 위엔 어느새 웃음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참을 수 없는 침묵을 강요하는 시간 과연 내가 쌓아야 할 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고2 임대현, <과연 내가> 위의 시는 어느 고등학교의 시화전 작품이다. 일관된 내용으로 쓴 글이면서도 도저히 그림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추상적 어휘들이다. 구체적 어휘로 유일한 '탑'이란 시어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탑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시가 반드시 이미지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이 추상적 어휘로 쓰여진 시의 내용은 읽는 독자들도 '뜬구름 잡기'로 마음에 실제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화전에 전시된 이 작품의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은 검은 3층탑이 하나 구체적이었을 뿐, 시의 내용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신입생 시절의 희망찬 설계와 축복을 지나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황하는 고등학교 2학년생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는 마음을 쓴 것으로 추정해 볼 수는 있으나 " '탑'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음의 시는 앞의 시를 쓴 학생과 유사한 인식 속에서 쓰여진 시이다. 이른 새벽부터 보충수업이니 야간 자율학습이니 정신없이 돌아가는 학교생활 속에서 자신의 존재조차 잃어버리는 일상 생활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학생의 하루를 떠올리며 미소를 띄게 한다. 특히 자신의 무의식적인 생활을 '개미들의 대열'에 비유해 선명성을 더하고 있다. 아침인지 새벽인지 시계가 요동을 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계의 보턴을 눌러 우선 요동을 막고, 나는 또 눕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언제인지 세수를 하고 와 시계를 보며 옷을 입었는지 걸쳤는지 신발을 신었는지 들었는지 모르게 뛴다. 헐떡이며 운동장 한 가운데를 개미들의 행렬같은 대열에 끼어 가고 있다. 종이 울린다. 개미들의 대열 속에서 나도 순간, 힘든 것도 모르고 뛰어 올라 교실에 앉아 있다. 이젠 여유를 가지고 앉아서는 오늘 아침을 안먹었구나 또 젓가락을 빼놓고 왔구나 가만, 오늘이 며칠이더라…… 토요일 되려면 며칠이나 남았지 한다. 김병섭(고1,1985), <하루의 시작>.『희망이라는 종이비행기』에서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정지용시인의 <향수>는 가만히 시를 읽다 보면 절로 리듬이 살아나고 그 선명한 이미지가 눈 앞에 펼쳐지면서 우리를 마음의 고향으로 데리고 가버린다. 설명하지 않고 그저 드러낼 뿐이지만 우리의 머리 속에 펼쳐지는 그림은 바로 고향의 모습인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향수(鄕愁)>,『정지용시집』, 시문학사, 1935. 신경림 시인은 『시인을 찾아서(1999. 우리교육)』에서 정지용의 <향수>는 시인의 체험에 의한 직접적인 투영이기보다는 조선 일반의 풍물이라는 성격이 짙다며, "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의 은유에는 풍요가 있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에서는 평화의 이미지가 있다."고 했다. 이렇듯 시 속에 드러나 있지 않은 행간 속의 의미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이라기보다는 시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의미이기에 독자는 그 숨겨진 의미까지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블로그 > 들꽃 향기 | 글쓴이 : 세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