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학 이야기 - 詩는 어떻게 쓸 것인가 15
다음의 <바다>는 고등학생으로서는 좀 긴 시를 쓰고 있다.
인터넷상에 내보인 고등학생 문학동아리 홈페이지에서 인용을 했다.
이 학생은 감수성과 상상력이 뛰어나 장차 시를 잘 쓸 수 있는 자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개 한 개의 시어들이 각각의 의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연결이 안된다.
즉, 시어의 유기적 관련성이 없어 무엇을 말하려는지 통일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바람기 가득한 산 속
이슬이 튕기어 번진 안개 사이로
촉촉이 젖은 이끼 곁에서
알 수 없는 푸른 바다 내음.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를
빼앗아 날고 싶다던 바다가
새가 잠수하기만을 기다리다 지쳐
수평선에서부터
땅 속 깊이 박힌 바람을 일구어
새를
향해 손을 뻗는다.
계속 뻗은 손의 키는
점점 줄어들고
이제는 산을 타기 시작한다.
거북이의 기는 속도보다 느리지만
바다는 창공을 나는 꿈을 상상하면서
흙을 삼키며 산을 오른다.
산의 흙을 갉아먹고
도착한 정상에는
새의 날개는커녕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건 철썩거리며 진동하는 풀빛 메아리뿐
새의 날개를 갖지 못한 서글픔을
산바람에
실어 바람꽃을 피우고
바다는 제자리로 돌아간다.
뻐금거리는 물고기와 쓴 맛의 물초를 위하여
그리고 가끔씩 바다는
산이 그리울 때, 하늘을 날고 싶을 때
그리움을 바람에 날려
산 속 습한 곳에 바람꽃을 피운다.
추억을 되새기며...
고2, 원주 ㄱ문학회 회원.
<바다>
'바람기 가득한 산 속/ 이슬이 튕기어 번진 안개 사이로/ 촉촉히 젖은 이끼 곁에서/
알 수 없는 푸른 바다 내음' 이라니. 알 수 없는 미사여구의 나열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산 속에 안개가 내리고 있는데, 이슬 맺힌 이끼 옆에 서 있으니
바다냄새가 난다.' 는 뜻이라면 당연히 푸른 바다 냄새가 왜 나는지 알 수 없었으리라.
자신도 불확실한 느낌을 적어 놓으면 독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냥 알아서 읽어? 그건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신뢰성을 해치는 일이다.
첫째 연은 시적화자가 산 속에 있다. 그
러나 화자는 갑자기 바다로 가 있다. 첫 연이 둘째 연을 이끄는 서사였을까?
둘째 연에서는 바다가
하늘을 날고 싶어 새가 바다에 뛰어들기를 기다리다 지쳐
드디어는 손을 뻗어 수평선에서부터 땅속 깊이 박힌 바람을 일구어
새의 날개를 빼앗으려 한다.
마음껏 발휘된 상상력이지만 개연성이 적다.
땅속 깊이 박힌 바람을 어찌 바다가 일구어 낼까?
넓디넓은 바다가 겨우 작은 새의 날개를 빼앗으려 한다는 것도 그렇다.
셋째 연에서는 바다가 손을 내뻗었다가 그 키가 줄어들고 산을 오르며
창공을 느리게 나는 상상을 한다.
키가 준다는 표현이나 바다가 산을 탄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넷째 연에서는 정상에 도달하지만 새의 날개는 없고 철썩거리는 풀빛 메아리뿐이다.
철썩거리는 풀빛 메아리는 자신이 떠나온 파도소리인가?
비유가 억지스럽다. 그리고 다시 떠나온 바다로 간다.
물고기와 물초를 위해. 여기서 물초는 해초가 맞다.
없는 단어를 마음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언어의 창조는 우리의 조어법에 맞아야 하며,
언중의 공감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넷째 연에서 바다는 왜 산으로 갔느냐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바다로 돌아간 이유가 물고기와 해초를 위한 것이라면,
산으로 간 이유는 더욱 약화된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바다는 산이 가끔 그리워진다고 했고,
그럴 때는 산 속 습한 곳에 바람꽃을 피운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바람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바람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큰바람이 일어나려고 할 때
먼 산에 구름같이 끼는 뽀얀 기운'을 가리키는 뜻과
'여름철에 높은 산에 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로서 국화바람꽃,
그늘바람꽃, 꿩의바람꽃 등을 통틀어 일컬으며,
일명 '아네모네'라고도 하는 식물성의 바람꽃'일수도 있다.
그러나 뒤의 미나리아재비과의 바람꽃은 아닐 듯 싶다.
왜냐하면 산이 그리울 때, '하늘을 날고 싶을 때/ 그리움을 바람에 날려/
산 속 습한 곳에 바람꽃을 피운다.' 고 했으니 그리움을 담은 바람꽃을
바다가 피운다고 이해함이 타당할 듯싶다.
그러나 이렇게 두루 살펴도 바다가 왜 산을 그리워하는지 알
수 없다.
바다가 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피워내는 바람꽃의 비밀스런 사랑인가?
그렇다면 제목이라도 '비밀스런 사랑' 이라고 붙였어야 한다.
결국 주제의 모호함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알 수 없는 퀴즈 문제를 풀다가 그냥 지치면 '그런 것 같다'로 끝나야 할까?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논리적 심상을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최소한 바다가 산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제시될 수 있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시를 관통하면서 각각의 소재들을 하나로 모아줄 수 있어야
시의 틀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바람기'도 '바람끼'의 잘못인지, '바람의 기운'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못하다.
아직 습작기에 있는
작품을 이렇듯 꼬집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 시(글)를 써야함이 시쓰기의 처음이기에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를 쓸 때는 말을 만들려 하지 말고, 먼저 생각을 나타내려 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시를 쓰려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시적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부터 해야만 한다.
나에게 너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이제야 알았어.
널 떠나 보내고야
너가 나의 반쪽인걸
이제야 알았어.
너와 나를 반쪽되게 만들어준
이별이란 두 글자에 진정한
사랑이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어.
그러기에 난 이별에
행복할 수 있어
언제나
널 생각하며……
널 기다리며……
<이제야 알았어> 정선군 H고 ○○기
'밥' 매거진 7월호 중에서
위의 <이제야 알았어>는 청소년들의 연애감정을 쓴 시이다.
청소년시 중에 상당히 많은 시들이 사랑과 이별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시의 대부분은 주제가 분명한 대신에 남는 게 없다.
사춘기에 도달한 청소년들이 이성에 대한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 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시들에서 느끼는 바는
한결같이 감상적이면서 구체적 감정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 체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추상적 관념 속에서
개연성만을 가지고 시를 쓰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청소년들의 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어나 제목이
친구·봄· 버림· 이별· 안녕·행복 등등의 추상적 어휘다.
이는 사춘기적 감수성이 그대로 시속에 드러나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소재가 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형상화가 따라 주어야만 한다.
그저 막연한 감정 표현에 머물러서는 시로서의 맛을 내지 못하게 된다.
이는 소재의 잘못이 아니라 구체적 형상화에 이르지 못하는
창조적 사고가 없는 시쓰기가 문제가 된다.
청소년들이 시를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름다움이나 슬픔이라는
정서의 가장 초보적 단계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정서를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진술에 머문다.
이는 우리 교육이 삶과 동떨어진 교육을 하고 있음에 무관하지 않다.
이육사의 <광야에서>를 읽고 나도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보겠다는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황진이의 <어져 내일이야>를 읽고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기 전에
소재가 무엇이고 주제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시속의 시적자아가 되어 또 하나의 인생을 체험해본다는 생각은
시험문제와 무관한 쓸 데 없는 짓으로 취급되고 있는게 오늘의 문학교육이다.
고등학생들에게 시를 읽어보라면 어떤 시든 간에 한결같이 예쁘게 읽으려 하거나,
힘이 하나도 없는 어조로 무기력하게 읽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시 읽기의 어조는 시의 내용 이해마저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은 시를 읽는 재미마저 빼앗기게 되고 만다.
이러한 시 읽기는 내로라 하는 단체가 주최하는 시낭송 대회도 예외가 아니다.
시는 그 시의 주제에 맞게 때로는 울먹일 수 있어야 하며, 또 때로는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는 예쁘고 잘 다듬어지고,
시어가 그럴 듯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으면 시 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