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문학 이야기 - 詩는 어떻게 쓸 것인가 14
1.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미음의꽃이피었습니다
우우의꽃이피었습니다
기역의꽃이피었습니다
우우의꽃이피었습니다
이응의꽃이피었습니다
히읗의꽃이피었습니다
오오의꽃이피었습니다
아아의꽃이피었습니다
묵음화꽃이피었습니다
2.
진달래꽃이피었습니다
지읒의꽃이피었습니다
이이의꽃이피었습니다
니은의꽃이피었습니다
디귿의꽃이피었습니다
아아의꽃이피었습니다
리을의꽃이피었습니다
리을의꽃이피었습니다
애애의꽃이피었습니다
진단내꽃이피었습니다
3.
한그루꽃이피었습니다
히읗의꽃이피었습니다
아아의꽃이피었습니다
니은의꽃이피었습니다
기역의꽃이피었습니다
으으의꽃이피었습니다
리을의꽃이피었습니다
우우의꽃이피었습니다
한그루꽃이피었습니다
한글의꽃이피었습니다
고 원 <숨바꼭질>
고 원의 시는 이상의 시보다 단순하다.
동어반복과 각 연의 첫 행에 쓰인 단어를 철자 순서대로 풀어 제시하면서
'무궁화→묵음화, 진달래→진단내, 한그루→한글의'로 변이되고 있다.
이러한 언어유희적 시적 태도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해체에서 출발하여
시인의 바램이 남과 북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이상으로 전개된다.
<숨바꼭질>에서 보이는 시각적 형태는 구체시(具體詩)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나,
그 시각적 특성이 시의 내용을 규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고원의 시에서 무궁화가 묵음화가 되면서 남쪽의 상징이 해체되고,
진달래가 진단내가 되며 북쪽의 상징이 해체된다.
그리고 한 그루의 꽃이 피면서 '한글'로 통합됨을 보인다.
여기서 한글이란 '한민족의 얼'로 상징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의 체제와 사상을 억압했던 분단민족의 언어가
진정한 통일민족의 언어로 피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규칙적인 10개의 글자 수와 10줄의 시행은 규격화된 모습을 보여줄 뿐,
통일의 자유의지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은 황지우 시인의 <무등>이란 시이다.
山
절망의산
대가리를밀어버
린,민둥산,벌거숭이산
분노의산,사랑의산,침묵의
산,함성의산,증인의산,죽음의산
부활의산,영생하는산,생의산,회생의
산,숨가쁜산,치밀어오르는산,갈망하는
산,꿈꾸는산,꿈의산,그러나현실의산,피의산
피투성이산,종교적인산,아아너무나너무나폭발적인
산,힘든산,힘센산,일어나는산,눈뜬산,눈뜨는산,새벽
의산,희망의산,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평등한산,대
지의산,우리를감싸주는,격하게,넉넉하게,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황지우의 <무등>에서는 시의 형태가 내용을 제어하고 의미의 확대를 이루고 있다.
다음은 고등학교 학생의 시를 참고로 연상에 의한 상상력의 확장 모습을 살펴보자.
달님마저 숨어 버린
좁은 골목길
골목길에 있는 건
오직
가로등 하나
가로등이 만들어 낸
노란 불빛
누굴 위한 불빛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빛나기 위한 불빛이 아닌
비추기 위한 불빛이라는 것.
<1998년 ㅅ고 시화전 작품. 1학년 >
위의 시에서 가로등의 확장구조를 살펴보면,
'가로등-노란 불빛-알 수 없는 불빛- 비추기 위한 불빛'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가로등 불빛에 대해 '알 수 없음'이란 진술이 시의 의미적 확대를 방해하고 있으며,
다음의 '비추기 위한 불빛'이란 인식과도 모순되고 있다.
따라서 시 전편의 흐름으로 보아 '가로등이 자신을 밝혀 남을 비추어준다'는
희생적 의미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상상력의 빈곤으로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적 묘사에 그치고 있어 시로서의 맛이 없다.
시의 맛은 사실성에 있다기 보다는 상상을 통한 유추(類推;미루어 짐작함)로
내재된 의미를 떠올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된 의미가 없어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이는 시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