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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인과 그 가문 / 심은섭

휘수 Hwisu 2006. 12. 12. 11:19

 

노인과 그 가문

 

심은섭

      

태백시 장성광업소 맞은편 태백중앙병원 611호

진폐증 환자실

한 노인이 사타구니 쪽으로 고개를 구겨놓고

누워있다. 그 병상 옆에 노인을 빼닮은 쉰 살 넘긴

노총각도 새우등을 한 채 누워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병상과 병상 사이에 모여 앉아

지상에서 마지막 눈물로 죽음의 층계를 닦고있다

 

낡은 엔진소리가 세습된 노총각은

노인이 걸어온 날들을 떠올렸다

빈 도시락에 캄캄한 어둠을 채워 퇴근하던 날

이빨 빠진 사기술잔 입에 물고

낡은 유행가를 부르며 허공에 꿈을 묻어버리던 일

기침소리 골방 가득해도 빈 지갑의 주름을 펴려는

손바닥의 굳은살은 박달나무보다 단단했다

 

갱도 275km 속에서 수 천년을 침묵하던

검은 돌의 어깨를 곡괭이로 내려 찍던

노인의 숨소리는 초침이 돌아 갈수록

공터에 버려진 경운기 엔진소리를 냈다

산소마스크가 그에게 물을 뿌려주지만

서늘한 보자기는 그의 얼굴을 덮었다

칸데라*의 심지에 더 이상 불을 밝히지 못하고

그가 밀던 탄차에는 달빛만 가득 실려 있다

 

밟고 오르던 죽음의 층계를 한 계단 남겨놓은

쉰을 넘긴 노총각

그의 누대를 떠올릴 사내아이가 없어

병상 베갯머리에 앉은 누이가

시멘트처럼 굳어지고 있다

 

 

*candela : a lantern(초롱)

 

 

 

2006년 <문학들> 겨울호

출처 : 굴뚝새 시인
글쓴이 : 심은섭<굴뚝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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