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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꼬치오뎅을 먹었던 어느 토요일 오후 / 권대성

휘수 Hwisu 2006. 8. 8. 09:58

냉정과 열정사이에 낀
나같은 사람의 삶이란
겨울이 와도 한 여름 땡볕처럼 뜨겁기만 하고
여름이 와도 한 겨울 몰아닥치는 한파처럼 차갑기만 하다.

인생의 가장 뜨겁고도 차가운 한 철을 지내고 있다는 의식적인 자각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From 2002년 11월 22일 Brighton England

지난 겨울에 적어놓은 메모가 문득 생각이났다.. 씨네 21의 냉정과 열정사이의 개봉광고를 보다보니 문득 떠올랐나 보다. 4시가 넘었다.. 주말인데도 일때문에 이렇게 사무실에 나와있다....

4년 반만에 돌아온 서울의 거리는 한달이 지난 지금도 꽤나 낯설때가 있지만, 오늘 오후의 햇살은 오히려 너무도 친숙한느낌일 뿐이었다. 그저 '완연한 가을날씨구나'라는 것을 입으로 되뇌이며 조금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의 뜻하지 않은 퇴근길..그렇게 종로를 돌아 나오면서 인사동 들어가는 초입을 지날 무렵 무슨 나는 이상한 인력같은 것에 이끌렸는지 (물론...사실 배가 고팠을 것이겠지만 후후...) 근처 포장마차에 발걸음을 멈추어서서 뜨근뜨근한 국물에 꼬치오뎅을 하나 와작와작 호호 불면서 먹었다.

언제나 그렇게 혼자 먹을땐...뭔가를 빨리 급하게 먹게된다. 죄지은 사람인냥, 그렇게 이유없이 주변이 의식되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서울에서도 그랬다....최영미의 옛 시, 혼자라는 건에서 나오던 그 구절의 기억처럼 그렇게 말이다. 실비집식탁에서 사내들에 둘러쌓여 먹는...

갑자기 뭔가.. 초초하고 두려워졌을까...입안에 꼬치오뎅의 절반을 한꺼번에 다 넣고 씹어 넘키려 할 무렵.... 뭔가 가슴이 짠하면서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저항없이 그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나를 엄습한 어떤 기억과의 끈질긴 악연때문이었을까...
어쩌면...선선한 가을기온 탓에 몸이 오싹하게 느껴질 그럴 무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하루끼의 sputnik sweetheart를 읽다가 Jack Kerouac을 알게되었을 때.. 시내의 서점을 다뒤져.. Lonesome Traveler를 손에 쥐고서야 무슨 끈질긴 욕망같은걸 덜어냈다는 안심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구한 그 책은 Ralph Goings의 작품 Ralph's Dinner 가 예쁜 실버 커버에 둘러쌓여있던 거 였는데 정말 이지 멋진 그림이었다.



Ralph's Dinner by Ralph Goings 1982 oil on canvas, 44 1/4" x 66 x 2", Harris works of Art, New York

혼자...홀로...그렇게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그런 여행자를 위한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
하지만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그런 안도감이 느껴졌던 그 그림...

2년 전 여름 동경에 머무르면서 들던 '그런 생각들' ' 혼자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은 도시' 에 대한 단상들도 문득 다시 스쳐갔다... 후후...

가끔 그 어떤 그리움속에 붕괴되어가는 나를 본다. 있지도 않았던 실체를 그것도 중첩된 기억의 그 뒤엉켜버린 실타래들을... 그냥 멀리서 두렵게 정작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않은채.. 그렇게 내버려둔 신파극..

그렇게 엉뚱한 생각들을 하면서 꼬치오뎅을 먹었던 어느 토요일 오후...

가을이다.. 다시 돌아온 서울...그 망각된 기억의 미로속에서... 나는 냉정과 열정사이에낀 그런 삶의 그림을 벗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서울...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출처, 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