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자 / 마경덕
서울역, 노숙자 / 마경덕
어제 오후, 서울역에 갔습니다. 동대구에서 열리는 '시하늘' 행사에 초청을 받아 차표를 예매하러 갔었습니다. 날씨는 쾌청하고 햇살은 투명하고 평화롭고 좋은 날이었습니다.
지하철과 연결된 새로 지은 서울역 건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시람들, 서울역은 분주했습니다. 하나같이 밝은 얼굴들, 말쑥한 옷차림들,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덩달아 행복했습니다.
차표를 끊고 걸어 내려오는데 곳곳에 노숙자들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자거나 소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까치집 머리, 더러운 옷, 초점 잃은 눈, 새까만 목덜미, 찌든 맨발, 숨이 턱, 막힙니다.
어디 앉을 만한 자리는 노숙자들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서울역에서 내려오는 계단은 어찌 그리 더럽던지, 온갖 얼룩으로 발 디딜 데가 없습니다. 세상에, 우리나라 서울역이 이 지경이라니. 고속도로 그 흔한 휴게실만 가도 화장실이 반질반질 한데 언제 청소를 하고 안했는지, 한숨만 나옵니다.
병든 닭처럼 졸고 있는 노숙자들,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어머니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금줄에 고추도 달고 미역국도 끓이고 동네방네 아들 낳았다고 자랑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줄줄 눈물이 흘렀습니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내 아버지, 내 아들, 내가 누워있었습니다. 그간 영등포역이나 영풍문고 앞에서도 노숙자를 보았지만 불빛 아래. 건물 안에서 만난 노숙자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숨길 것 없이 다 드러난 백주 대낮, 환한 햇살 아래 드러난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아팠습니다.
믿고 따르는 언니같은 시인에게 울먹울먹 전화를 했습니다. 그 시인은 어려운 일을 겪고 다시 일어선 오뚝이 같은 분이라 제 심정을 이해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서울역 근처에 노숙자들이 맘놓고 쉴 곳이 없을까요?
아냐, 쉴 곳이 있어도 그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고 나오는 거래.
그렇다면 진정한 쉼터가 아닙니다. 그곳보다 길바닥이 좋은 이유는 무얼까요?
제가 만약 로또에 맞아 부자가 된다면, 앞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반드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어제 저녁 뉴스에 한 사람이 집을 천 여채가 넘게 가지고 있다던데, 몸 하나 누일 곳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부자 여러분, 서로 나누면 안될까요? 좋은 일을 많이 하시면 하나님이 다 기록해 두셨다가 반드시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셨거든요. 생전에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좋은 곳에 가시기 바랍니다. 돈이 많다고 잘났다고 자랑하지 말라, 하셨지요. 오늘 밤 일을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부자가 재물을 많이 쌓아두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 하였는데, 그러셨지요.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풀잎의 이슬이요 안개라 하였습니다. 서로 나누면 그만큼 행복해집니다. 곧 추위가 닥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추위가 무섭습니다. 부자 여러분, 서로 나누십시오.
개만도 못한, 못하게 사는 사람들,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는 적잖은 돈을 들이면서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돈 한푼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선 안됩니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도 사람은 개보다 낫고 개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향동인
시집, 신발론(2005, 문학의전당)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