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인 시모음
전남 여수 출생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수료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난시> <갈무리> <창작노트>동인
지느러미 여자
밤새 수평선을 지킨 등대처럼
충혈된 눈알을 좌판 위에 깜박거리는
저 여자, 그 옛날 파도가 삼켜버린
남편이라도 건져 올렸을까
하루종일 염하듯 물을 끼얹다가
울컥, 하얀 포말을 토해낸다
게처럼 어시장을 어기적거리는 행인들
봄 햇살을 떨이하자 물간 생선
거적같은 비닐 봉지에 주워 담으며
구시렁, 구시렁 물고기 숨쉬듯
담배 연기 허공으로 말아 올리는 저 여자,
밀물지는 눈동자에 첫날 밤
꽃이불 같은 저녁 노을 붉게 퍼진다
닳아버린 지느러미 꼼지락거리며
반지하 어항 속으로 투숙한다는 저 여자,
비린내 흘리던 자리에 알을 스는 비늘들
귀갓길 저녁 별로 투두둑, 박힌다
봄날, 火葬을 하다
보신탕 집에서 얻어 온 똥개 뒷다리를
가스렌지에 올려 두고 깜빡 잠이 들었다
어린 날 폐가 우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검둥이의 비명 소리에 눈을 뜨자
세상에, 방 안 가득 살점 타는 냄새라니,
검게 그을린 냄비 속의 잿더미를 보면서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내 살갗을 꼬집어보았다
장송곡을 빠르게 연주하듯 환풍기를 돌려도
살점 타는 냄새 진동하는 내 방이 화장터라니,
어디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난다고
개가죽 같은 옷을 걸친 다음날 출근길
지하철 승객들이 코를 씰룩거리는
개 같은 내 인생이라니,
저수지에 빠진 후배를 火葬한 그 해 봄날도
내 몸에선 살점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연락선은 오가고,
거문도 선창가, 목화다방
섬이 되어버린 아가씨들 수척한 가슴에는
목화 한 송이 피어나지 않았어
잡초 무성한 초등학교 가로지른 언덕배기
영국군 묘지 향해 물결치는 바다는
질긴 남도 사투리로 속앓이하고 있었지
내리막길 낯선 방문객 기침소리에도
들썩이는 폐가는 집 떠난 주인 기다리다 지쳐
서까래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
삼호교 지나 철 지난 해수욕장,
섬 아이들 알몸 훔쳐보는 갈매기들 뒤쫓아
신선바위 가는 길, 축축하게 젖은 동백숲에
땀으로 범벅된 뱀들이 스치는 그 오싹함이라니,
신선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구
고지가 바로 저긴데, 기와집 몰랑 쪽빛 남해에
발 담근 신선바위처럼 신선이 되어버린
나그네, 들끓는 가슴에 물길을 내는
연락선은 오가고, 뭍에서 훔쳐 온 섬들을
오랫동안 방생하고 싶었어
아주 오랫동안,
침몰
잠들기에는 좀 딱딱한 다리미판에 꽃무늬 티셔츠 한 장 드러눕는다
다림질을 하려고 물을 뿌리자 오랜 감기를 앓았는지 낮동안 빨랫줄에 매달린 꽃들이 시들시들 마른기침을 한다 누군가의 등에 담쟁이처럼 확 뿌리내리고 싶지만 매 순간 버림받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제발, 세탁기로 돌려버린 구겨진 기억을 펴다오 서서히 시동을 켜고 파도를 가르는 외항선 한 척 주름진 셔츠 목덜미를 간질이자 흔들리는 뱃머리 거친 숨을 몰아쉬는 물살에 닳은 소매 끝으로 황홀하게 감전된 꽃잎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차라리 가라앉아도 좋아 무면허 항해사는 중얼거리고 곰팡이 습기 찬 방 안에서는 전원 플러그를 뽑아줘야지
뒤집히는 배 위로 꽃물 스민 저녁노을 바다의 천장이 내려앉는다
적막을 말하다
갯모래로 지은 집 바람나지 말라고, 빨간색 양철 지붕 마디 굵은 동아줄을 옷고름처럼 질끈 동여맸지만 여름이면 주름진 치맛자락 자주 펄럭거렸다
태풍에 억장이 무너져 내린 천장, 쥐똥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고 물먹은 벽지 갉아먹는 곰팡이꽃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뭍에서 유배되어 떠밀려 가는 집 외양간 늙은 암소처럼 살아온 날들 되새김질하는 노인은 파리똥 내려앉은 낡은 사진틀에 갇힌 송아지 몰고 다니던 자식들 이름 차례로 불러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애기섬 앞바다 배 타러 간 큰아들 바닷물에 쓸려 보낸 뒤 산비탈 일궈온 허망한 세월 꼬깃꼬깃 가슴에 접어 뒀지만 가끔씩 연탄집게로 아궁이 두드리며 읊조리는 육자배기 한 가락 해거름 굴뚝 연기처럼 풀풀 휘감아 오르면 허물어지는 집 정지문*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 누구냐, 소리치면 이내 사라지는 미치도록 보고 싶은 저 환영(幻影), 갓김치 안주삼아 털어마시는 쓴 소주 몇 모금 목젖을 타고 아득한 바다로 흘러 내렸다
그해 가을 서까래 앙상한 그 집 마당에는 늦바람이 났는지 출렁이는 다도해 물살에 섬을 낳았다는 노인의 소문만 해초처럼 무성하게 자라고 고추 잠자리떼, 바람난 빈집을 오래도록 맴돌았다
*부엌문의 남도 사투리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