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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그대, 마르지 않는 사랑> / 김인자시인
휘수 Hwisu
2007. 7. 16. 08:32
산문집 <그대, 마르지 않는 사랑> / 김인자시인
- 그 모두가 감히 사랑이기를 -
어느 가을, 달빛 가득히 부서지는 숲에서 나는 '용서'라는 말을 배웠다. 유럽으로, 미주로, 남태평양으로, 어리석게도 나는 너무 먼 곳에서 큰 것만을 보겠다는 고집으로 시간을 허비했고, 그것으로 지쳤다. 내 나라 삼천리 금수강산 늘 곁에 있어서 무감각했던 아주 작은 것들이 이토록 어여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들꽃과 나무들 사는 숲이 마음 안에 집을 짓고 그들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자연은 내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분께 고백하고 싶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다 보려는 듯 무작정 길거리에서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먼 곳을 돌아 당도한 이 곳이 내가 그렇게도 꿈꾸며 가고 싶었던 그 곳임을 알았기에, 주어진 작은 것들을 아끼고 나누며 남은 시간을 건너가고 싶다고.... 강원도 산골 외딴집, 세월의 찌든 때와 남루한 세간들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햇살이었다. 이토록 주체할 수 없는 내 방황기조차 그 햇살이 지켜주리라 믿으며 언젠가 나 돌아가 쉴 곳도 햇살 가득한 자작나무 숲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밤 여행에서 돌아와 하룻밤 안락한 침대에서의 숙면으로도 나는 족하다. 눈을 감고 어제와는 또 다른 풍경을 꿈꾸며 가방을 챙겨두지 않고서는 잠자리에 들 수 없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낡고 헐렁한 코트, 뒷굽 닳은 신발, 쓰다만 스케치 북, 잉크 가득 채워진 만년필, 엽서 두어장, 그리고 문 밖에서 뜬눈으로 나를 기다려 주는 낡은 자동차. 됐다! 언제고 마음이 조를 때 떠나기만 하면 된다. 이 겨울엔 주어진 행복에다 시가 있는 여행 에세이 한 권을 보태게 되었다. 어딘가에 있을 나의 독자와, 곁에 있다고 느끼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분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눈물이 돌게 하는 겨울에게 작은 마음을 전하며....
'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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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에서
시/ 역광 아침 산책 논둑에서의 한나절 황금 모래펄의 멸치떼 밀몰, 파도소리로 집을 짓다 바다에서 바다로 띄운 편지 빈 들에서 우리를 가장 자연답게 만드는 햇살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즐거운 산책 일몰, 그 장엄 의식 자연만이 자연은 아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길 내 기억속의 들국화 만추의 강 빛의 미생물 낙엽에 젖다 시/ 가을강
2. 겨울에서
시/ 북한강 해는 오늘 서쪽에서 뜨겠습니다 솜사탕 맛 파도소리 일몰 강이 가르쳐준 침묵 달빛을 몸에 바르다 천천히라는 저 말 자연이 상영하는 영화 햇살 속으로 고향바다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사랑의 힘 참 좋은 아침 10시 시/ 민들레
3. 봄에서
시/ 개망초 꽃 저 들판의 개망초꽃 저 햇빛 속 은사시 나무 밤의 山問에서 아카시아 향기 춤추는 개복숭아 나무 그늘 아래 안개와 노는 밤의 강물 길은 어디에서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대, 자연의 마음을 가진 사람 모두가 꽃이다 소리의 길 길 위에서 얻은 길 끝내 모두를 사랑할 것이다 앉은뱅이 손거울 시/ 내 나이 일곱 살 때
4. 여름에서
시/ 아카시아 꽃 핀 그 숲 꿈의 섬으로 길에서 만난 초가집 한 채 원시림 속에서의 하루 어둠과 입맞추는 계곡에서 동강에서 동강을 꿈꾸며 전나무 숲에서의 고백 모든 침묵은 긍정을 위해 있다 저녁이 내리는 개울의 신비로움 마음에 푸른 물이 들다 창 직전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시/ 길, 새벽기차
찾아가는 길
<우리글출판사 239쪽/ 1999.12.24출판>
출처, 김인자의문화산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