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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의 경계에서도 꽃은 핀다 / 정재록

휘수 Hwisu 2007. 6. 27. 11:04

본명 정재영
전남 승주 출생
한양대 행정대학원 졸업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현재 국세청 전신정보관리관실 근무


사람과 사람의 경계에서도 꽃은 핀다 / 정재록


우리 집으로 가지 하나 담을 넘은
앞집 감나무가 그랬다
놈이 떨군 감꽃을 목에 걸기도 하고
땡감을 물에 우려먹긴 하면서도
담 너머로 당당하게 뻗어 온 팔뚝이
우리 집을 넘보는 것 같아서 늘 떫은맛이 남았다
해거리도 없이 매년 공중에 붉은 노적가리를 쌓는 것이
잘 사는 집 유세로 보여서
감들이 탐스럽게 불 붉혀가며 단내를 풍겨도
따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기가 죽었다
감나무에서 그 어마어마한 노적가리를 허물 때면
담 넘어 온 가지에 달린 족히 한 접은 되는 감들이
그 집 호의로 번번이 우리 차지가 되곤 해도
고운 때깔에 비해 맛은 덜했다
감들도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담 넘어 온 감나무는 담이 없어도
이 쪽으로 팔 하나를 뻗었겠지
사람이 담을 쌓았고,
나무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담을 넘었을 뿐이지
그보다는 앞집 흥성한 운세가 우리 쪽으로 파이프 하나를 댄 거지
그래서 그 쪽 텃밭의 푸성귀들이 그렇듯 푸른 기운이 장한 거지
그런 생각이 들 때까지 나는 한참 더 커야했다
그때부터 그 감들이 입에 달던 거였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