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배선옥 시모음

휘수 Hwisu 2007. 1. 20. 08:53

1997년 시문학 등단
인천 문인협회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시문학회 회원
시집, 회떠 주는 여자(시문학사 2004)

 

회떠 주는 여자 
 
바다와 사람들
그 사이에 여자는 있다


날마다 횟감을 흥정하는 소란 속에
선승처럼 고즈넉이 앉아
오늘도 칼질을 한다


손을 뻗으면 무엇이든 집을 수 있는
반경 오십센티의 작업장
파랗게 날을 세운 칼을 집으면
이제 보이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감상은 손만 다치게 한다
한순간 명줄을 끊어주는 것도 자비
배를 가르고
미처 소화되지 못한 세상을 흩어내
깊숙이 묻힌 진심을 들어내면
곧 또하나의 역작이
접시에 담겨지리니

 

빈 집

 

추적이는 빗속으로
짐이랄 것도 없는
몇 개의 짐보따리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것을
이제는 혼자 남겨진 집이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참 오랜 세월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나잇살을 먹은 허리가 치수를 늘리듯
그 사이 집에도
방이 한 개 두 개 늘어나
제법 식솔을 거느린 가장의 테가 났었는데

빈 집이 또 한 채 늘었다.

 

사거리에서

 

보고싶어요 라고
수첩 한 켠에 흘겨 썼다가
펜으로 덧칠해 지워버려
구멍이 날 듯 나달나달해진
마음 속으로
낯선 눈빛 하나 자꾸만 발을 디민다
팔짱을 여미며 밀어내지만
검불처럼 쉽사리 떨궈지지도 않는

내가 끝없이 당신에게 몰입해 갈 때
어쩜 그도 나와 똑같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서로 비껴가는 시선에
마음이 아리다가도

여기는 비보호 좌회전 건널목
나는 당신을 향해
직진만 할 수 있는데
내 앞길을 막으며 들어서겠다는 그를
이번엔 피할 수 없을 것같아
차라리 눈을 꼭 감아버리면

어쩌지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꽃잎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