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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은 ‘백화점’에서 ‘맥가이버’를 만나다 / 김준

휘수 Hwisu 2007. 10. 24. 00:53
김준
mountkj@chol.com
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연구교수
92년 '소안도'에 갔다 어촌에 빠져버렸다. 늘 바다와 만나는 꿈을 꾼다.

바닷가 작은 ‘백화점’에서 ‘맥가이버’를 만나다
해남 북평면 ‘영전백화점’

가게에는 없는 것이 없다. 과자류, 식품류, 주류, 간단한 생필품은 물론 농구공, 고추 가는 기계, 리어카 바퀴, 수도, 호스, 농약통 등.
가게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없는 것도 구해 준다. 마을 주민들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먼 길 마다 않고 달려가서 구해 오고 직접 설치해 주기까지 한다.

그가 움직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해남 북평의 ‘맥가이버’이자, ‘가제트 형사’인 김병채(60)씨. 그가 아내 윤재순(62)씨와 함께 운영하는 가게는 동네 슈퍼지만 ‘백화점’이다. ‘영전 백화점’이라고, 북평 일대에서는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백화점이다.

없는 것 없는 만물상…주민들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구해 와
영전에 구멍가게가 가장 번성했던 시절은 김 농사(김 양식)가 돈이 되었던 1970년대였다고 한다. 지금은 인근 남전마을까지 포함해 영전 일대가 170여 호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300호가 훨씬 넘었을 정도로 번성했다. 

해남 북평면 일대에서는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영전백화점’.
북평의 ‘맥가이버’이자 ‘가제트 형사’인 주인 김병채씨와 아내 윤재순씨가 환한 얼굴로 가게 앞에 섰다.

ⓒ 김태성기자


지주식 김발로 현금을 자주 만지는 이곳에선 마을 개들도 오천 원짜리를 물고 다닐 정도로 돈이 흔했다고 한다. 지금은 4곳 밖에 안 남았지만 조그만 시골에 가게만 해도 16개나 있었다. 당시엔 모두 간단한 생필품에 막걸리를 파는 가게였다.

하지만 이제 젊은 층들이 줄어드는 탓에 아이들도 없고, 과자 소비도 줄어들었다. 주민 대부분이 노령화되면서 술 소비도 줄어들었다. 김 농사가 잘 되던 시절에는 곧잘 술을 먹던 사람들도 대부분 술을 끊은 지 오래이다. 당시 바람이 불거나 물때가 맞지 않아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주민들은 가게에서 술과 화투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물론 외상으로.

당시 논이 4천여 평에 밭이 3천여 평으로 인근에서는 땅을 꽤 가지고 있는 축에 들었던 김씨 부모님은 구멍가게도 하나 꾸려가고 있었는데 김씨가 도시로 나가는 것을 반대했다. 50대에 귀하게 본 아들이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고 한다. 김씨가 아버지를 도와 작은 구멍가게를 하게 된 동기다.
이름도 없던 가게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처음 붙인 이름이 ‘교동슈퍼’였다. 옛날부터 그렇게 불리던 동네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런데 가게 안에 하나 둘 상품이 늘어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만물상’이라고들 부르면서 이름을 바꾸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 정한 이름이 ‘영전백화점’이다. 마을 이름을 따 ‘영전’이라 했고, 만물상 대신 ‘백화점’을 붙인 것이다.

 

노인 고객들 ‘해결사’에 ‘부모 사랑 택배’ 보관소


사실 김씨도 백화점 안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잘 모르는 때가 있다. 최근에 판 가장 비싼 물건이 ‘고추가는 기계’란다. 이것도 어떤 주민이 와서 있냐고 해서 몇 대 가져다 놓은 것이 다 팔려 나가고 1대만 남았다.

해남에선 마늘과 배추 농사를 많이 짓는다. 밭농사가 많은 탓에 스프링클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호스와 스프링클러를 찾는 통에 하나 둘 갖춰놓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인근에 스프링클러는 그가 직접 가서 설치하고 있다.

 

사진1.2.3.4 둘러보면 없는 것 없이 다 어딘가 ‘찡겨 있고’
‘백혀 있는’ 영전백화점 내부.
사실 주인 김씨도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잘 모르는 때가 있다고 한다. 백화점 안은 늘 단골들로 북적거린다.
인근 10여 개 마을 500여 호 주민들이 들락거린다.

ⓒ 김태성기자

사진2  ⓒ 김태성기자

사진3 ⓒ 김태성기자

사진4 ⓒ 김태성기자


시골엔 노인들만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는 뭐든지 구해 오는 모양이다. 게다가 직접 배워서 전기도 고치고, 싱크대도 놓고, 냉장고도 손보아 준다. 만능 해결사 맥가이버나 가제트 형사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영전백화점의 단골 고객은 땅끝 갈두 인근 통호리에서 완도로 들어가는 초입의 남창에 못 미치는 북동 서홍까지 십리에 이르는 10여 개 마을 500여 호 주민들이다. 이들이 구입하는 것은 식료품이나 과자류 등 슈퍼에서 찾는 것들보다는 생활용구류에 가깝다.

인근에 남창 등 비교적 큰 지역에 농협 마트가 있기는 하지만 영전백화점처럼 한곳에서 모든 것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김씨처럼 친절하지도 않고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대형 마트에 비해서 정말 약간 비싸더라도 주민들은 영전백화점을 이용한다.

인근 백일도나 화도의 섬사람들도 이 곳을 이용하는 고객들이고 보면 영전백화점은 도심의 어느 백화점보다 넒은 시장과 고객층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객들이 집을 비우게 되면 대부분의 택배들은 이곳에 맡겨진다. 도회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택배도 이곳을 거쳐서 가는 경우가 많다. 논과 밭에서 나는 농산물은 물론 바다에서 나는 굴 등 해산물도 이곳에서 박스를 사서 포장을 하고 택배를 불러 자식들에게 보내진다. 최근 가장 많이 나가는 품목이 바로 아이스박스란다. 영전백화점에서 엿볼 수 있는 부모들의 자식 사랑의 대목이다.

 

2대째 이어지는 가게…직원은 아내와 단 둘


김씨는 앞으로도 10여 년은 장사를 더 할 생각이다. 다행인지 최근에 땅끝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외지인들이 ‘백화점’을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며, 땅끝 해넘이를 찾는 발길로 연말에도 손님이 많은 편이다.

ⓒ 김태성기자


보통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10시 무렵에 닫지만, 농번기에는 1시간 연장 근무해 5시에 문을 열고 11시에 문을 닫는다. 물론 피서철에는 아무 때나 문을 두드리는 통에 시간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아내 윤재순씨와 단 둘. 김씨가 출장이라도 나가는 날이면 그의 아내는 꼼짝없이 가게를 지켜야 한다.

사진1.2.3.4 주인 김씨는 뭐든지 ‘맞춤형 서비스’를 한다.
시골엔 노인들만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뭐든지 구해 온다. 주민들이 호스와 스프링클러를
찾는 통에 하나 둘 갖춰놓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인근에 스프링클러는
그가 직접 가서 설치할 정도다. ‘고추 가는 기계’도
어떤 주민이 와서 있냐고 해서 몇 대 가져다 놓은 경우다.

ⓒ 김태성기자

사진2 ⓒ 김태성기자

사진3 ⓒ 김태성기자

사진4 ⓒ 김태성기자


옛날에는 명절 때 같으면 전세 버스가 네 대나 고향을 찾을 만큼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나마 여름철 손님에 그쳐 관광객이 많지 않으면 장사하기 힘들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김씨는 혹시 아들 며느리나 딸 사위가 시골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가게를 줄 생각이다. 2대째 이어지고 있는 ‘영전 백화점’이 삼 대까지도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 2005년 필자가 처음 만났던 북평의 맥가이버 김병채 님은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영전백화점을 꾸려 가며 동네 사람들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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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력  2007-10-12 17:16:45  
ⓒ 전라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