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읽고싶은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1

휘수 Hwisu 2007. 6. 22. 12:31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니프, 스커리, 헴 그리고 허


아주 먼 옛날 멀고 먼 곳에 두 마리의 생쥐와 두 명의 꼬마 인간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미로 속에서 맛있는 치즈를 찾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했고, 풍요로운 생활에 젖어 있었다.
두 생쥐의 이름은 스니프(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는 의미의 의성어)와 스커리(종종거리며 급히 달린다는 의미의 의태어)였고, 두 꼬마인간은 헴(헛기침한다는 의미의 의성어)과 허(점잔을 뺀다는 의미의 단어)였다. 생쥐처럼 작지만 겉모습과 행동은 현재의 우리들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작아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이 벌이는 놀라운 일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생쥐와 꼬마인간은 매일 미로 속에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를 찾아다녔다.
스니프와 스커리의 두뇌는 매우 단순했지만 그들의 직관력은 매우 훌륭했다. 그들은 다른 생쥐들처럼 조금씩 갉아먹기에 좋은 딱딱한 치즈를 좋아했다. 햄과 허는 대문자 'C'라는 이름의 치즈를 찾아다녔다. 그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성과 경험만이 녹아있는 삶의 동기였다. 두 꼬마인간은 이 치즈가 그들에게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생쥐와 꼬마인간은 모든 면에서 서로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매일 아침, 맛있는 치즈를 찾기 위해 미로 속을 뛰어나간다는 사실만큼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미로는 많은 복도와 맛 좋은 치즈가 있는 방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모퉁이와 막다른 길도 있었다. 누구든지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운 곳이었다. 그러나 길을 발견하기만 하면 더없이 훌륭한 삶을 즐길 수 있는 비밀이 숨겨진 곳이기도 했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치즈를 찾기 위해 간단하기는 하지만 비능률적인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길을 따라 가다가 치즈가 없으면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갔다. 스니프가 발달되 후각을 사용하여 치즈가 있는 곳의 방향을 알아내면 스커리는 그곳을 향하여 앞장서서 달려갔다. 때때로 그들은 길을 잃기도 하고, 방향을 잘못 잡기도 하고, 심지어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두 꼬마인간 헴과 허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생각하고 과거의 경험을 살리는 능력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의 소신과 감정으로 인해 혼란에 빠질 때도 있었다. 결국 방법은 달랐지만, 어느날 그들 모두는 각자 좋아하는 치즈를 치즈창고 C에서 찾게 되었다.    23

 

그후 매일 아침 생쥐와 꼬마인간은 달리기에 적합한 옷을 입고 치즈창고 C로 향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이 일은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여전히 아침 일찍 일어나 항상 같은 길로 미로를 통과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생쥐들은 운동화를 벗어 끈으로 묶은 뒤 목에 걸었다. 필요할 때 재빨리 신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햄과 허도 처음에는 매일 아침 맛있는 치즈가 기다리는 C창고로 뛰어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뒤 그들의 생활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햄과 허는 조금 늦게 일어나 천천히 옷을 입고 C창고로 걸어갔다. 그들은 매일 아침 C창고에 도착해서 느긋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운동복은 아예 벽에 걸고 운동화는 아예 슬리퍼로 바꿔 신었다. 치즈를 발견한 뒤 그들은 편안한 생활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정말 좋아."
햄이 말했다.
"우리가 평생 먹고도 남을 만큼 치즈가 많잖아."
꼬마인간들은 마음 놓고 행복과 성공을 즐겼다. 햄과 허는 C창고에 있는 모든 치즈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 창고와 집이 너무 멀어서, 그들은 창고 근처로 집까지 옮겼다. 사회생활도 모두 창고 근처에서 해결했다. 보다 안락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글과 치즈그림으로 장식도 했다.
생활은 너무나 안정적이었고, 맛있는 치즈 또한 넘쳐나고 있었다.   25

 

치즈를 가진 자는 행복하다

 

가끔 햄과 허는 친구들을 치즈창고로 데리고 가서 자랑스레 치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좋은 치즈야, 그렇지 않나?"
때로는 맛좋은 '치즈'를 친구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했다.
"우리는 이 치즈를 먹을 만한 자격이 있어. 이 치즈를 찾기 위해 열심히 일했거든."
햄은 신선한 치즈 한 덩어리를 떼어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그리고 늘 하던 것처럼 잠이 들었다. 매일 밤 두 사람은 치즈로 배를 가득 채우고 뒤뚱거리며 집에 돌아와 쉬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치즈를 더 먹기 위해 창고로 향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들의 자신감은 어느새 오만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기분에 취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반면 스니프와 스커리는 시간이 흘러도 매일 하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혹시 어제와 다른 변화가 생겼는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고, 긁어보기도 하면서 창고 주위를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난 뒤에야 치즈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어느 날 아침, 그들이 C창고에 도착했을 때 창고엔 치즈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치즈의 재고량이 매일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언젠가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마리의 생쥐는 운동화끈을 질끈 동여맸다. 다시 새로운 창고를 찾아나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28

 

사라져버린 치즈

 

생쥐들은 사태를 지나치게 분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 많고 복잡한 생각에 눌러 행동을 미루는 법이 없었다. 이처럼 생쥐에게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두 간단했다. C창고의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들은 미로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 스니프가 코를 높이 들어 킁킁 냄새를 맡은 후 스커리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스커리는 미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스니프는 전력을 다해 스커리를 따라갔다.
그들은 신속하게 새 치즈를 찾아나섰다.     29

 

그날 밤, 느지막한 시간에 햄과 허는 뒤뚱거리며 C창고에 도착했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치즈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았던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웬일이야. 치즈가 사라졌어."
햄이 고함쳤다.
"치즈가 없다구, 치즈가!"
계속해서 소리를 질려댔지만 허망한 메아리만 되돌아올 뿐 치즈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침내 그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시뻘게진 얼굴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30

 

선택

 

그들은 새로운 사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허는 치즈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머리만 흔들 따름이었다. 그 역시 C창고에 치즈가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충격으로 얼어붙어서 오랫동안 그 자리에 붙박혀 있었다. 그는 그의 삶에 더 이상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자신했던 것이다.
햄이 계속 고함을 지르고 있었지만 허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이들 꼬마인간이 보인 행동은 볼썽사납고 베생산적인 반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만한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치즈를 찾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스트레스였고, 또 이들에게 있어 '치즈'란 단순히 배를 불리는 양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치즈는 음식의 일종이지만, 꼬마인간들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치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영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허가 치즈에 걸고 있던 희망은 현재 자신의 삶, 즉 생활의 보장인 동시에 미래의 안정이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백향목길 옆에 아담한 통나무집을 짓고 오순도순 살고 싶은 꿈이었다. 햄의 경우엔 다른 사람들을 거느리는 중요한 인물이 되어 *카망베르 언덕에 큰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의 행복이 한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카망베르(Camembert) : 표면에 흰 곰팡이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맛이 진하고 부드러운 치즈로 프랑스 치즈 중에서 최고 명품으로 손꼽힌다.


치즈가 소중할수록 그것을 꼭 붙잡아라

 

다음날 두 꼬마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치즈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C창고로 행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치즈는 그곳에 없었다. 그들은 망연자실한 채 굳어버린 동상처럼 움직임없이 그곳에 서있었다. 허는 있는 힘을 다해 두 눈을 꼭 감고 손으로 귀를 막았다. 모든 것을 닫아버리고 싶었다.
그는 치즈의 재고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송두리째 없어졌다고 믿었다.
헴은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거대한 사고체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의 두뇌를 이용해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마침내 허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36


"스니프와 스커리는 어디에 있지? 혹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헴이 비웃었다.
"그것들이 뭘 알겠어? 그것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단순히 반응하는 생쥐일 뿐이야. 우리는 꼬마인간이야. 그들과는 달라. 우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도 있고.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서는 안 돼. 만일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아야 해."
"왜 우리가 보상을 받아야 하지?"
허가 물었다.
우리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무슨 권리?"
"우리는 치즈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
"왜?"
"우리 때문에 치즈가 사라진 게 아니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치즈를 모조리 훔쳐간 거라구. 그러니 우리는 그에 따른 응분의 보상을 받아야 해."      36

"아니, 우리도 이제 새 치즈를 찾아나서야 해. 우리에겐 보상을 받을 자격도 권리도 없어. 치즈는 사라져버렸어. 더 이상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구."
허가 말했다.
"절대로 안 돼."
헴은 끝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반대했다.
"나는 이 문제를 근본까지 파헤칠 거야."


헴과 허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이, 스니프와 스커리는 이미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들은 미로 깊숙이 들어가서 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치즈가 있을 만한 창고를 찾아다녔다. 오직 새 치즈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이 그들을 인도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마침내 N치즈창고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어마어마하게 쌓인 치즈덩어리들이 그들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들은 너무 좋아 비명을 질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마치 꿈결인 듯 창고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난생 처음보는 온갖 종류의 치즈가 그들을 반겼다.     37


스니프와 스커리가 감격에 젖어있는 동안, 아직도 헴과 허는 C창고에서 사태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현실적인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배고픔의 강도는 더해갔고, 마음에 좌절과 분노가 생겨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허는 이따금 스니프와 스커리가 새 치즈를 찾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치즈를 찾아 힘들게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래지 지나지 않아 결국 찾아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때로 허는 스니프와 스커리가 새 치즈를 찾아내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갑자기 미로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신선한 치즈를 발견해 맛있게 먹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수록 C창고에 대한 미련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38

 

"가자."
허가 소리쳤다.
"싫어."
헴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이곳이 좋아, 편해. 다른 곳은 몰라. 다른 곳은 위험해"
"그렇지 않아.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를 생각해 봐. 바로 미로를 통해서였다구.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난 이제 너무 늙었어. 길을 잃고 헤매는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아. 너는 어때?"
그 말을 듣자 허의 마음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그를 사로잡고 있던 새 치즈에 대한 희망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39

 

헴과 허는 여전히 C창고를 서성거리며 매일 치즈를 기다렸다. 헴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창고 안에는 없는 것 같아. 치즈는 아마 이 근처에 있을 거야. 벽 뒤에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다음날 헴과 허는 연장을 가져왔다. 헴이 끌을 벽에 대고 허가 망치로 내려쳐서 창고 벽에 구멍을 만들었다. 힘들고 지쳤자만, 그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남은 것은 벽에 뚫린 큰 구멍밖에 없었다.
허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우린 좀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조만간 누군가가 다시 치즈를 제자리로 가져다 놓을 거야."
힘이 허를 달랬다.
허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치즈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40

 

다시 미로 속으로

 

날이 갈수록 꼬마인간들은 굶주림과 스트레스로 인해 약해졌다. 허는 사태가 호전되리라는 기대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에 싫증이 났다. 그는 이내 사라진 치즈에 대해 집착하면 할수록 상황은 악화되기만 할 뿐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치즈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불투명한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한심했다.
내 말을 들어봐. 우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해. 치즈는 이곳에 없어.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지. 텅 빈 창고에서 기약없는 미래를 기다리며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어." 41

허 역시 미로 속을 다시 달리고 싶지 않았다. 치즈가 어디에 있을지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고, 그 속에서 길을 잃을 위험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C창고에서 만끽한 안락에 취해,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던 그들은 운동화마저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한참을 뒤져서야 그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시는 필요가 없을 것처럼 느껴졌던 운동복과 신발을 보자 허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헴은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42

 

"설마 다시 미로로 가려는 건 아니겠지? 사람들이 치즈를 가져다 놓을 때까지 나와 함께 기다리는 것이 어때?"
"너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허가 말했다.
"아무도 우리가 먹던 치즈를 다시 갖다 놓지 않을 거야.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없어. 이제는 새 치즈를 찾아야 해."
헴이 대들었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도 치즈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만일 다른 곳에 있다 해도 우리가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거야?"
"나도 몰라."      43

 

허는 그때까지 수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질문을 무시하기로 했다.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새 치즈를 찾았을 때의 여러 가지 행복을 떠올리기로 했다. 포만감이 주는 안식과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그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우리 주위의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항상 그대로 있길 원하지.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아. 그게 삶이 아닐까? 봐, 인생은 변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아.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허는 그의 쇠약해진 친구를 바라보며 설득하려고 노력했지만 헴은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어 허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허는 그의 친구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헴이 완강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기에 냉정히 그의 애원을 거절했다. 헴과 자신의 어리석었던 행동이 부끄러웠다. 왠지 모를 후련함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44

 

떠날 채비를 마치자 허는 더욱 힘이 솟았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웃어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미로로 떠날 시간이야."

헴은 허를 비난하며 대꾸조차 하지 않으려 들었다. 허는 작고 날카로운 조각을 들어 헴을 위해 늘 하던 대로 치즈 그림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벽에 썼다. 헴이 마음을 바꿔 새 치즈를 찾아나서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헴은 그것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허는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미로를 응시했다. 그는 어쩌다 자신이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45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전까지는 미로 속에 더 이상 치즈가 없거나, 있어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두려움이 그 자신을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만들고 무기력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허는 미소를 지었다.

헴은 아직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에 빠져 있지만, 허는 이제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고자 한다. '왜 좀더 일찍 자리를 박차고 나서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를 마음속에 품고서.

허는 미로를 행해 출발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있을 때 느꼈던 평온함이 떠올랐다. 한동안 굶주림에 떨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 친근한 곳이 여전히 자신의 발목을 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허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정말 미로 속으로 가고 싶은지 한 번 더 고민해 보았다. 그가 예전에 써놓았던 글귀가 시야에 들어왔다.    47

 

두려움을 없앤다면 성공의 길은 반드시 열린다

두려움의 극복
그는 생각해 보았다.

두려움이 때때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 자신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두려움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안일한 생각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허는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다시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그는 깊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미로를 향해, 미지의 세계를 향해 천천히 달려나갔다. 그는 길을 찾으며 C창고에서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랫동안 치즈를 못 먹어서 몸이 약해진 것을 느꼈다. 미로 속을 달리는 데 예전보다 더 힘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49

그는 만약 다음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없이 변화에 따르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하면 일이 더 쉽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치즈도 없는 창고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낫지."

출발 후 며칠 동안 허는 여기저기에서 약간의 치즈를 발견했지만 치즈는 곧 떨어졌다. 허는 헴이 용기를 내어 미로로 나올 만큼 충분한 양의 치즈를 발견할 수 없었다. 허 자신도 아직 확신이 없었다. 미로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 까닭이었다.    50


지난번 미로 속을 다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변화가 보였다. 조금 앞으로 나아갔나 싶어 둘러보면 막다른 곳이었다.

여기저기 가로놓인 장애물들이 그의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앙금처럼 남은 두려움이 때때로 당혹감을 느끼게 했지만, 치즈를 찾아서 미로 속을 다니는 것이 전에 걱정했던 만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 치즈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과연 실제적인가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51

허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새 치즈에 대한 기대를 통해 자신을 독려했다. 참고 견딘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지금, 필요한 것은 행동뿐이었다.

그는 스니프와 스커리가 할 수 있으면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안락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52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치즈는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었다. 치즈의 양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남아있는 치즈는 오래되어 맛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치즈는 오래되어 곰팡이까지 피어 냄새가 났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도, 허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견된 결과는 나타나기 마련이야. 스니프와 스커리는 변화를 알아차리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가 C창고라는 벽에 갇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벽에 글을 썼다.     53

 

치즈 냄새를 자주 맡아보면 치즈가 상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을 헤맨 끝에 마침내 허는 큰 창고에 도착하게 되었다. 규모로 보아 맛있고 싱싱한 치즈가 가득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실망스럽게도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될수록 그에 비례해 허의 의욕도 떨어져갔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그를 유혹했다.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엄습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헴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자신이 써놓았던 글귀가 떠올랐다.

"두렵지 않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잇을까?"

실제로 두려움은 커다란 무게로 그를 위협해 왔다. 매우 빈번하게…….   55

 

어떤 때는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조차 몰랐지만, 홀로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위축시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허약해진 몸과 마음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알 수 없는 공포를 자아내는 두려움의 실체는 그의 마음속에 숨겨진 딜레마였다.

허는 아직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변화'를 향한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56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새 치즈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

모험의 즐거움

 

어두운 통로를 내다보니 또 다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저 앞에 무엇이 있을까? 텅 빈 공간일까? 아니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ㄴ 종류의 골포가 그의 상상을 자극했다.

허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ㄹ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두려움에 짓눌려 있던 자신감이 살아났다. 그는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두운 복도로 뛰어내려가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허는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사이에 그의 영혼을 튼튼하게 만드는 자양분을 발견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허는 점점 기분이 유쾌해졌다.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나는 치즈도 없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친구를 위해 기꺼이 글을 남겼다.      59

 

두려움을 극복하고 움직이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시원한 미풍이 미로 저쪽에서 불어왔다. 신선한 바람이었다. 두려움을 떨치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겼다. 가슴 가득 기쁨이 넘쳤다. 허는 참으로 오랜만에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기쁨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는 마음속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리면서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치즈, 헤엄을 치듯 치즈 속을 누비는 자신의 모습, 상큼한 치즈향이 코끝에서 느껴졌다.

허는 구체화된 그림을 꼭 실현하고 싶다는 의욕을 되새겼다. 그러자 그 치즈 창고를 다음 공간 혹은 다음 통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솟구쳤다. 61

 

새로운 치즈를 마음속으로 그리면 치즈가 더 가까워진다.

'왜 전에는 이렇게 해 보지 않았을까?'

허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는 힘을 내어 경쾌하게 미로 속을 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치즈창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치즈 몇 조각이 입구에 있는 것을 보고 허는 흥분했다.   ~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창고는 비어 있었다. 누군가 이미 그곳에 와서 새 치즈 몇 조각만 남겨놓고 떠난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엄청난 양의 새 치즈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즈는 부지런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거야.'

허는 후회를 접고 혹시 헴이 이제 자신과 함께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지금까지 온 길을 되.짚어 가다가 멈춰 서서 벽에 글을 썼다.    63

 

이어집니다~

 

출처, 네블,인드라의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