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수 시모음
1969년 전남 무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1996년 경향신문 신춘 당선
중세의 가을 4
신장이식수술을 끝낸 친구는 간호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죽으러 가는 잎새들로 바람은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며칠전에 만난 까치에게 눈인사를 했다
개미처럼 달
려가고 싶다 어머니의 젖을 물러,
수양버들 이파리가 흙먼지처럼
흩날리는 것은 그리움이 미쳤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결국 믿음이 없어 떠나왔던 것이다.
수레바퀴국화를 선물했던 누이의 탓이 아니다.
나의 생태계, 손금은 알리라
다시는 나의 손으로 포장할 수 없는 사람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던 날의
나를.
사실은 우리 모두 귀족이고 싶었다.
토익TOIEC 점수로만 나를 계산할 수 있었던,
대학시절, 인간임을 기억하고 싶었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편지쓰기를 좋아했다. 겨울철이 와도 거리엔 영정을 든
여인들이 추엽처럼 아스팔트를 떠돌았다.
사진을 보면 천년을 썩지 않을 눈망울들,
누이가 사 준 볼펜을 잃어버려 더더욱 어쩔 줄 모르겠던 한 해가
초상집 잉걸불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기에 살고 싶었다
형광등이 떨어질까봐 두려워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취방 벽에
이름 석자를 적었다.
1996년 경향신문 신춘 당선작
당선작으로 뽑은 '중세의 가을 4', '중세의 가을 2' 등 노만수의 작품이 갖고 있는 젊음과 설득력의 원천은 대학시절의 체험 및 그때와 달라진 지금의 모습들에 대한 성찰이다.
특히 우리의 정치적 불행 때문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젊은 시절이 훼손 당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고, 그 훼손은 그들이 불행 뿐만 아니라 일견 칭찬받을 일에도 들어 있음을 생각하면, 나이를 몇 살 더먹은 사람의 심정도 늘 착잡하고 미안했던 것이니, 그런 문맥속에 있는 작품의 스산함에 정서적으로 합류하게 된다.
간혹 어떤 매너리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떤 좌절이나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나의 생태계, 손금은 알리라/ 다시는 나의 손으로 포장할 수 없는 사람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던 날의 / 나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시쓰기를 위한 노력을 엿보게 하는 대목들이다.
심사평 : 신경림 , 정현종
소주
맑은 사람도 취해야 할 때를 안다
그는 나를 마시지도 않고 투명한 만큼 나와 함께 있다
별빛도 꽃잎도 아닌 그가 가끔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홀린듯 사랑한다는 듯이 속부터 맑게 차오는 흔들림 바람이라고
빗방울이다가 새울음이다가 건너마을 가는 길목이다가
어디선가부터는 길이 없음을 알게도 해준다
그러나 그는 맑은 만큼 누군가를 오늘도 일으켜 세우며 살아간다
그의 무게는 보이지 않는다
견뎌야 할 제 몸의 아픔을 위해 산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맑음을 조각내 서슬처럼 울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