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관련

나의 시, 나의 시쓰기 / 고진하

휘수 Hwisu 2007. 4. 6. 07:43

1953 강원도 영월 출생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1987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나의 시, 나의 시쓰기 / 고진하

 

굴뚝의 정신 저 나즈막한 함석집, 저녁밥을 짓는지 포르스름한 연기를 곧게 피워올리며 하늘과 內通하는 굴뚝을 보고 내심 반가웠다 거미줄과 그을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창틀에 올망졸망 매달리니 함석집 아이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 그 單音의 구슬픈 피리 소리도 곧장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울어도 울어도 천진한 童心은 목이 쉬지 않고 저처럼 쉽게 하늘과 連通하는구나! 아 아직 멀었다 나는 저 우뚝한 굴뚝의 정신에 닿으려면! 괄게 지핀 욕망의 불아궁이 속으로 지지지 타들어가는, 본래 내 것 아닌 살, 하얀 뼈들 지지지 다 타고 난 하얀 재마저 쏟아 버리지 못하고 다만 無心川邊 우두커니 서서 저녁밥 짓는 포르스름한 연기 피어오르는 저 우뚝한 굴뚝을 바라만 보고 있는 <自然과 自由 사이의 균형잡기> 며칠 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멀쩡한 굴뚝을 무너뜨린 적이 있다.

 

연탄보일러로 바꾼 터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굴뚝이지만, 굴뚝이 없는 집안 풍경이 허전할 듯싶어 뽑아버리지 않고 그냥 놓아 두었었다. 그런데 그 굴뚝 속에 새가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 속에 새가 들어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루 전날 동네에 쥐약을 놓았엇기 때문에 쥐약을 설 먹은 쥐가 들어가 버스럭거리는 줄로만 생각했다.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도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아 아내와 함께 가까이 가서 들어 보니, 푸드득푸드득 날개치는 소리가 새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이렇게 높은 굴뚝 속으로 새가 날아들다니! 뽑아 버리기엔 아쉬움이 적지 않았지만, 굴뚝 속에서 굶어 죽어가는 새를 살려주어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에 기꺼이 동의를 하고 시멘트 벽돌로 단단히 고정된 굴뚝을 힘겹게 흔들어 옆으로 넘어뜨렸다. 굴뚝이 수평으로 기울어지자 순식간에 새 한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굴뚝 입구로 날아 나왔다.

 

"저거 봐요, 분명 새지요!" 경이에 찬 눈빛의 아내가 소리지르며 새를 쫓아갔다. 그러나 굴뚝 속의 검댕이 잔뜩 묻어 온몸이 까맣게 된 어른 주먹만한 새 한 마리가 아내의 즐거운 외마디에 놀란 듯 아내보다 먼저 물 없는 하수도의 풀섶으로 빠르게 한참 기어가더니 일순 공중으로 푸드득 날아 올랐다. 그리고는 대추나무와 잣나무 사이로 잠시 수평비행을 하다가 금세 마을 뒷편 야산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아쉬운 눈빛으로 새를 쫓던 아내는 야산 숲으로 새가 자취를 감추자 아내 돌아서며 활짝 웃는 낯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스스로 대견한 일을 했다는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암, 대견한 일이구 말구!' 그동안 우리는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와 살면서, 저 자재로운 새의 날개짓이 없으면 우리 인간의 생명도 부질없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거듭 뉘우쳐 온 터였다.

 

삼라만상을 그것 자체로 존재하게 하며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떠받쳐 주는 것은 자연과 자유라는 두 기둥이다. 자연 없는 자유, 자유 없는 자연 그것은 실로 공허한 것이요 허망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감히 말하지만, 최근의 내 시의 지향은 이 두 기둥 사이의 균형잡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이러한 지향에 목말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심히 왜곡된 욕망의 지향으로, 자연과 자유라는 두 기둥의 밑뿌리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오늘날 이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숱한 문제들은 이러한 균형의 허물어짐에 비롯되는 것으로 인류 생존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모름지기 시의 존재 이유가 대낮에 빛풍뎅이를 장대 끝에 매달고 뽐내는 것과 같은 일신의 명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혹은 일인승의 배를 타고 홀로 피안에 이르려는 소승적(小乘的) 아집의 벗어남이어야 한다면, 혹은 에고이스틱한 모든 중심의 해체, 궁극적으로 그런 해체의 욕망마저 넘어서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면......! 아, 그러나 이제 나는 시의 존재 이유 따위로 괴로워 하지 않으련다.

검댕에 싸인 깊은 굴뚝 속 갇힌 자유의 날개짓 소리들 들었으니!


굴뚝의 정신 / 고진하


저 나지막한 함석집, 저녁밥을 짓는지 포르스름한 연기를
굳게 피워올리며 하늘과 내통(內通)하는
굴뚝을 보고 내심 반가웠다
거미줄과 그을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창틀에
올망졸망 매달린 함석집 아이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 그 단음(單音)의 구슬픈 피리 소리도
곧장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울어도 울어도 천진한 동심(童心)은
목이 쉬지 않고
저처럼 쉽게 하늘과 연통(連通)하는구나!

 

아 아직 멀었다 나는
저 우뚝한 굴뚝의 정신에 닿으려면!
괄게 지핀 욕망의 불 아궁이 속으로
지지지 타들어가는, 본래 내 것이 아닌 살, 하얀 뼈들
지지지 다 타고 난 하얀 재마저 쏟아버리지 못하고
다만 무심천변(無心川邊)에 우두커니 서서
저녁밥 짓는 포르스름한 연기 피어오르는
저 우뚝한 굴뚝을 바라만 보고 있는
 
출처, 간이역에이는시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