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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것을 증오한다 / 전혜린

휘수 Hwisu 2007. 3. 14. 00:26

나는 평범한 것을 증오한다

 

한 여자가 있었다. 기억될만한 자신의 작품하나 남기지 않은 문학인.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 예리한 두뇌, 가부장적인 속박만이
존재하는 시대에 가장 자유로운 의식과 사고를 가진 자유주의자.
전혜린. "불꽃 같은 그의 생과 닮을 수만 있다면." 수많은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던 그를 이 문학의 계절 가을에 초대한다. 그의 치열한
사고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언어, 글(유고집)을 토대로 느낌, 의식 그리고
그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 등을 현실의 이미지(인터뷰)로 모아 20대 초반
의 치열한 생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시대를 넘어 다시 만나게 하려 한다.
(편집자 주)

 

우선 당신을 떠올리자면 자아에 대한 몰두, 절정의 순간에 대한 탐닉, 이리
저리 부딪히는 열광, 정체모를 불안과 절망 등 혼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일제 시기에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다녔어. 아버지의 권유와 우등생다운
유치한 무의식의 흥미로 들어간 게 법대였지. 처음부터 내게 맞지 않는
분야였어. 리얼하지가 않았거든. 하고 싶었던 건 뭐냐고? 문학이었어.
1955년 내 나이 22살,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안되는 것, 바로 그런 것을
꿈꾸며 홀로 독일유학을 선택했지. 뭔헨대학에서 독일 리얼리즘과 니체,
소설가 루 살로메 등 문학과 철학에 몰두 했어. 그리고 내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안으로, 의식으로의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길 원했지. 자아의 만족
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절망하고 몰두하고 열광하고....

 

왜 하필 독일이었지요?

 

우연이라고 말해두지. 생은 늘 우연의 연속이니까. 나의 학창시절은 점수
따기와 책상 버러지와 독서광 등 뭐, 그런 부류였어. 온갖 관료적 점수주의적
암기식 교육에 대해 반발심과 자유로운 학문에 대한 끝없는 갈망도 품었지
그게 결국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짐작컨데 그게 바로 '출발하기 위해 출발한'거군요

 

그래. 출발은 예기치 않은 것에서 시작되는 거니까. 홀로 낯선 나라에
있다는 것, 지독한 외로움이지. 그러나 그 속에 에술가적 오만과 긍지를
잃어선 안된다고 다짐했어.

 

당신의 모든 글은 힘이 있으면서 박학다식하고 애절하고 날카롭고
그러면서 아주 감성적인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분명히 그래. 의식이란 자체는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까.
공허한 것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기엔 어떤 극단이 필요했을 지도
몰라. 세상에 가장 싸우기 어려운 상대는 자의식일 테니 말이야.
그 의식과의 싸움은 많은 학문적 욕구와 광적인 날카로움, 그것들을
견제할만한 감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을 '생의 예술가'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나는 평범한 것을 증오하지. 중학교 때 썼던 글 속에 있는 한 구절이
있어.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된다'. 어떤 것에 광적으로 목말라 하고
평범한 것에는 참을 수 없는 공허감이 지배했어.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원하는 의식, 내가 열정적으로 삶에 몰두하는 인생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광기나 권태를 화두로 삼은 것도 그런 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광기라고 불릴만큼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음은 분명해. 그러나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권태로운
일상도 함께 존재하지. 그 둘의 충돌 가운데 한없이 절망하고 또 허무의
나락에 빠져들곤 했어. 일생의 모든 것(지식, 정열, 사랑)을 모든 이에게
쏟아 부을 수 있고 꿈과 기쁨과 괴로움이 터질 듯이 팽팽하게 찬
순간순간을 살아갔으면 하는 욕구가 집착이었을 수도 있겠지.

 

인간은 쥐덫에, 인류의 쥐덫속에 벗어나려 원을 긋고 달린다는 에리히
케스트너의 '덫에 걸린 쥐에게'라는 풍자시를 소갰을 때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일젊은이들은 전쟁에 대한 저주,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뚫어놓은
커다란 공허, 나치의 유태인 학살의 부조리와 초인적인 잔인성, 그 후
발전된 사회의 부적응이 있었어. 그 속에 그들의 출구는 뭘까?

 

자신의 마음 아닐까요?

 

맞아. 그들에게 출구는 하나야. 바로 '네 속으로 파고들어가거라'라는.

 

그것이 젊은이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시대에 대한 방관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죽음을 내포한 존재인 인간은 케스트너가 가르치듯 밖을 보지 말라는
즉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고 시도하지 말라는 거야. 자기의 내부에
파고 드는 것, 내적 관조에 의해서 어떤 체념적인 긍정을 얻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지 않겠어

 

당신의 글 속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의식의 치열한 고민이 없어진다면
생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의식과 완전한 자아. 그리고 죽음은
늘 서로 교통하고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평범해졌군요. 혹 그것이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까?

 

꼬집어서 '이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
사람들은 누구나 완전한 의식과 완전한 생을 추구하지.
그게 힘든거야. 가짜가 아닌 진자의 삶을 꿈꾸는 의식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지. 사실 난 혼자 살고 싶었어. 내 일생을 바치고 싶었어. 지유롭게.....

 

당신을 지금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될까요?

 

당시만 해도 여자는 대학 강단에 세우지 않겠다는 완고한 전통이 있었지.
여성은 순종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남편을 따르는 것이 전부였던 시대
였으니까. 적어도 그것을 이겨내고자 한 내 의식만큼은 페미니즘에 관여
했다고 할 수 있지.

 

흥미있는 이야기군요. 그 시대엔 쉽지 않을 도전적인 인생이었을 텐데.

 

반항은 삶의 지속성이 아닐까? 대개 예술가에게 안정이 오는 순간 감성의
불꽃은 꺼져가게 마련이거든. 물질, 인간, 육체에 대한 경시 그리고 관념,
지식에 대한 광적인 숭배, 그리고 내 내부에서의 그 두세계의 완전한 분리는
거의 영아기부터 내 속에 싹트고 자랐던 거야.

 

어쩌면 [데미안]의 싱크레어의 고뇌와 닮은 것 같은데요

 

데미안은 나에게도 중요한 의식의 실험을 보여 주었어. 악의 세계,
혼돈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유년기에 안 가져 본 사람이 있을까?
의식과 무의식, 각성과 도취, 지성과 관능 등 그 두 세계에 공존하는
싱클레어와 하나의 이데아인 데미안은 어쩌면 한 인간의 내면이지.
죽음의 순간 그 둘은 하나가 된거네. 그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존재한고 있다는 말이지.

 

물론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의 의지가 무너질 때겠죠?

 

여태까지 그냥 주어지기만 했었던 생을 생각하면 고통스럽지.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나의 생을 형성하고 싶다고 꿈꾸고 소망했지
내 운명을 능동적으로 이끌고 보다 체계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것은 공감할 수 있겠는데요

 

한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지. 그 속에서
완전한 자유, 생의 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보다는 이 세상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

 

결국 당신은 의식속으로 완전하게 빠져들기를 원했습니다. 인생이란
조금은 관조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인간이라는 조건하에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것일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근본적인 생,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하지.
그런 의미에서 유일의 진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회피하고 자그마한 일, 물질,
사치스러운 생활, 의존적이며 기계 같은 나날의 틀 속에 안주하는 의식,
이런 것들 속에 자기를 소외해 버리는 생활은 허위 위에 서 있는 것,
생과 사에 자기를 똑바로 응시하고 산다는 것은 무서운 용기와 정신력을
필요로 하지. 특히 이 사회의 구조와 한국적 풍토 속에서는 너무나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야.

 

당신은 짧은 소외를 버리고 긴 자유와 완전한 길을 선택한 거군요.

 

지금은 나를 만날 순 없지. 하지만 내가 꿈꾸었던 자유에의 의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뇌, 완전한 인생을 향한 치열함은 시간을 초월해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거야. 그게 생의 마지막 가치니까.

<이동조 기자>


완전하게 자기 생을 산 '유일한 여자'
- 유고집, 평론집을 통해 본 전혜린의 생애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는 독일문학가 전혜린을 두고 이렇게 쓴다.

"이 지상에 살고 간 서른 두해 자기의 생을 완전하게 산 여자였다.
가짜가 아닌 생이었다. 생을 열심히 진지하게 살았다. 정말로 유일한
여자였다."

그는 원래 법학도였다. 1934년 평안남도 순천 태생. 52년인 19세 때
서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법이 아닌
문학. 그는 독일에서 독문학을 전공한다. 어쩌면 그것이 생의 큰 변화를
몰고왔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꽉 잡고 싶다. 반복하여 습관화하고 싶다." 그의 정신과
학문에 대한 집념은 끝이 없었다. 극내로 다시 돌아온 그는 26살의
나이에 서울대 등에 강사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남긴 것은 8권의 번역서.
압록강은 흐른다(이미륵 1959), 생의 한가운데(루이제린저, 1961), 태양병
(H. 노바크 1965) 등. 그러나 정작 그토록 쓰고자 했던 자신의 글은
세상에 꽃피우지 못했다. 1965년 그의 나이 서른 둘, 끝내 관념의 완전한
세계와 현실 속에서 갈등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치열한 열정과 고뇌를 사랑했다. 그의 일기와 편지
등을 묶어 유고집을 내놓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수필집
<민서출판사, 1966>).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일기·서간집<민서
출판사 1968> 그리고 평전으로 이덕희씨의 '전혜린(작가정신)'등이
있다. 평전 '전혜린'은 지난 82년 초판이 나와 증보판에 이어 최근에는
신판까지 나왔다.

그 책들 속에는 전혜린이 걸었던 방황과 모험과 사랑, 학문과 완전한
생에 대한 성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영원히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정신의 갈망, 거기에 더없이 성실했던 그의 삶의 자세가
끊이지 않은, 많은 독자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학문화신문 1999년 11월 18일 목요일 제103호
주제기획 <나는 평범한 것을 증오한다.>
불꽃처럼 산 '광기의 천재' 전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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