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시모음
충북중원출생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1996년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출간,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시산맥,
시의지평 동인,
경인여대 강사, 호서대강사, 계간 시선 편집위원
파리
죄송+미안+황공=3×4 1)-5×7 2)+39 3)-3.142 4)×49 5)-
999 6)×7777) ......8)
셀 수 없는 어질 머리 억만 번의 비빔
그는 늘 싹싹 빌었다
지지 기반을 잃어버리도록 치졸하게
그의 잘못을 낱낱이
들어 올리기전에도
그는 싹싹 빌었다
나의 손등에서도 식탁에서도
도마 위에서도 김치에 앉아서도
어디를 가든 가자마자
제일 먼저
싹싹 빌었다
그의 특징이었다
나는 파리채를 들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제 손발을 비벼대는
기생곤충
앞에서 파리채를 들 수 없었다
파리지옥
긴 목숨의 내 삶이
너를 오래도록 기다리지
간질간질 내 육질을 지지면서
거리마다 자장을 흔들어
너의 새끼발가락까지 내 무릎에 올려놓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젠 너를 놓아줄 수 없어
누구와도 물 한잔 나누지 못해 홀로 서 있었지
불어대는 모래바람 속에서 건조한 살들을 만난다는 것은
사랑, 이라 말하기 불편했어.
필요에 의한 수급이 가끔 있었을 뿐이야.
하여, 먼지바람으로 네 음성을 막고
달콤한 너의 연육은 사막에 널어 두었지
혹시 너를 만날까 사막의 언덕을 돌아돌아 집에
이르곤 했어
그러나 너는 시럽냄새를 풍기며 사뿐히도 내게 온다.
순간,
하얀 꽃대궁을 밀어올리고 싶은 욕망이 불처럼 일어나
눈처럼 부신 다섯장 꽃잎을 펼쳐 올리면서
햇살을 받는 영광의 하루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젠, 바위같은 함묵을 깨워버린 너의 분홍빛 살점을
다시는 내어주지 않으리
나, 오랜 사멸의 늪에서 무척이나 버둥거렸지.
삶인지 죽음인지 초로를 마시고 모운을 삼켰지
그리고 이제 내 사랑은 지옥에 있거든
너는 파리지옥에 와 있거든
파도의 꿈
지나온 날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제 平生
말할 自由를, 自由를 주실 분 그런 분만 들어주세요
밀리고 밀리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의 가여운 발자욱
하나 남김없이 지웠답니다
지우는 일만 거듭하는 나는 神話처럼
쉼없이 흔들리며 살아왔어요
사람마다 여기에 城을 쌓곤, 성마다
무너지는 슬픔을 가지고 돌아갔답니다
그대들 천년의 슬픔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즈믄 가지의 자욱들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은빛 꿈, 첫키스
그것이 채 完成되기도 전에 뒤져 흔들어
지워야
하는 것이 제게 입이,
작은 입이라도 생기지 못한 이유가 될까요
오래고 더딘 모래시계
그 모래로도 다 셀 수 없는 모조리
부서진 연분홍 생꽃자죽 꿈을
이 모래사장에
한 번쯤은 남겨둘 만한 詩를 쓰고 싶어
지워지지 않는 말.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척박한 땅을 밀어올리며 영양을 섭취하였다
엽록소 없는 구차한 기생으로 나의 생존을 이루어간다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류의
일종으로 살아가는
내 치졸하고 왕성한 분해 능력을 그대 혹시 보았는가
낙엽과 땅과 그대의 생살,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나무를
무너뜨리고 땅을 갉아먹고
그대를 불태우는, 그대가 모르는 나의 뒷면
비가 오나 해가 비치나 사람들 모르게
세상을 변절시키는
것이 내 생이라면
그대 내게서 멀리 떠나 내가 없는 곳에 살라
내 화려한 망사나 필수 비타민보다 질긴 생존 능력을,
그리고
나의 균사, 뻗어나가 숲을 침식시키는 부당함을
강력하게 논하여다오
나의 자실체 공간을 배회하지 못하도록,
나를 겨울 같은 눈
속에 가두어다오
아니아니 저 건조한 사하라 사막에,
티벳의 고원에 나를 두어
사방에 뻗어가는 나의 썩음증
나의 물질
분해 끝이 나도록
거듭되는 순환의 고리 끊어다오
큰 나무도 단순히 부후* 일으키는 죽음의 나락
왕성한 나무의 니그린
제로로스,
헤민 제로로스를 힘없이 부수어내는,
너의 인대 백색 갈색으로 우주의 숲에 쓰러뜨리는 이 망할 것
나의 이율배반,
녹아내릴 것 같은 운명의 비는 유기물 형성하고
산소를 부르고 나의 생명을 부르고 그만 또 너의 호흡을 부른다
고요한 아침마다의
부후, 나의 정원, 화려한 망사.
*부후 : 버섯이 일으키는 썩음증
거리에서
내 마음 하나 비우지 못해 길을 걸었다 유쾌한 아낙네들 거리에 쏟아져 있고, 남 모르는 햇살을 간직한 채 미쳐 우는
바람은 아직도 내 곁에. 시계는 갔다 그저 제가 가르치고 싶은 지침은 하나도 못 가르치고 내 시계는 갔다 사랑이 찬란한 빛을 잃었듯이 마음은
흘러가고 있었다 누구든 머무는 바람을 안다면 내게도 좀 가르쳐다오 나아 그를 만나 떠다니지도 않을 곳에서 내 마음의 꽃들 걷어내고 싶어 파리의
보헤미안처럼 파가니니의 협주곡 하나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같은 저음의 고요를 하나쯤 간직하고 아무도 없는 섬에서 조금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내
그리움 사무치는 파도에 휩싸이는 여름을 보내고 나면 비바람이 그칠는지 골목길에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내 그리움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 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끝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없어도 된다면 나아 그 길에 있고 싶어 그 길에 내 노래 하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