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김록 시모음

휘수 Hwisu 2007. 7. 4. 08:37



1968년 서울
1998년 '작가세계' 신인상
본명 김영옥

2001년부터 필명 사용
시집 『광기의 다이아몬드』(열림원, 2003)

 

각도

속눈썹은 무언의 각을 이루고 있다
눈은 코의 경사면을 타고 미끄러진다
두 개의 동공은 코끝을 매만진다
마주보고 있는 섬 사이에
예각적 조응이 이루어진다
교차점에서 절벽을 타고 내려오면
평원이 펼쳐진다
들판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람이 있다
짧은 입맞춤이 있었다 

 

옹색한 제안

오오 앞으로 나서라. 겁먹은 사랑아

나의 낮은 밤이 있어서 산다
나의 밤은 낮이 있어서 산다
낮과 밤의 살갗에 수놓은 주술처럼
나.는.너.를.기.다.린.다.
사랑은 소리 없이 맹세에 눈물을 장전한다

밤이 눈꺼풀을 들면 슬픔은 서서히 살아난다
고요함은 오만에 취해서 하필
슬프다
슬픔은 굴러다니며 낮을 삼키고
내가 눈꺼풀을 들면 밤은
서서히 살아난다 낮부랑배의 숨결이 탄로 날까
조마조마하구나

낮이 밤에게, 밤이 낮에게
내-일-뭐-할-거-예-요?

밤이 낮에게, 낮이 밤에게
"나는 너를 기다릴 거야." 

 

쉬나무 숲

낱낱의 잎이
                 떨어진다
잎혀가
          떨어져 나갔다

구관조가 헛기침을 한다:
애완 사자(愛玩死者)란다

낱낱의 꽃이
                 떨어진다
꽃턱이
          떨어져 나갔다

숲은 흰빛에 갇힌다
두더지는 온통 눈이 멀었다

낱낱의 씨가
                 떨어진다
씨주머니가
                 떨어져 나갔다

염탐꾼 다람쥐 녀석이 씨를 물고 간다
딱따구리는 씨를 쪼개고
해충은 기름에 절어서 난리


위로 


그 저녁, 계절의 마지막 날
시계의 큰바늘과 작은바늘은 정각에서 멈춰 있었다
누군가 산책을 한다
같은 걸음걸이의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날은 그렇게 걷는 날
마침, 예사의 버릇처럼 비가 내린다
이처럼 일기(日記)란 일기(日氣)와 같아서
굳이 사소한 자취를 연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기(日氣)는 때맞추어 사람의 아둔한 감정을
비련의 주인으로 행사하게끔 요사를 부리므로
그러나 음악은
그와 같은 날 음악의 연출은, 위로가 된다

아아 사람은 위로받는다
사랑받지 않는다

슈트라우스는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정화 작품 24와 4개의 마지막 노래는 내게 위로가 된다
베토벤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내게 위로가 된다
무소르크스키는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의 노래와 춤은 내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하지만 나, 내가 한때 좋아했던 음악가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39번 E플랫장조 중 제2악장과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베를리오즈나 크라이슬러 등의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아 사람은 위로를 받은 적이 없다
위로가 될 마음을 찾는다


시집 '광기의 다이아몬드'(2003)

 

출처, 간이역에이는시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