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김다비 시모음 / 문학사상 (2003년 6월호) 신인상 수상작
휘수 Hwisu
2006. 5. 23. 01:11
옛살라비 외
공동묘지 하나 지나야 갈 수 있는 마을 간혹 냉잇국 끓는 소리 내며 기차 지나가고 입맛 없는 봄철 들판 위 가지런히 놓인 쇠젓가락 같은 철길 노루지**가지 끝에 복사꽃 피었다 왱왱거리며 왕왕거리며 복사꽃 속 무수히 들락거리는, 꽃잎보다 아련한 시절들 당도하기도 전 이렇게 설레는 건 봄처녀 마음인가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뒷집에서의 한때 정열 때문인가 무언가 허전한 마음으로는 결코 들어 올리지 못할 그 철길로 수줍게 웃던 그이 턱 아래로 해 저물던, 아득한 곳 향해 나는 지금 달린다 내달리고 있다 몇 집은 이미 후적후적 속을 휑궈 외로운 마음들끼리 홑겹의 속잎 번갈아 틔워내고 꼭 그만큼씩의 꽃 그늘 드리운 노루지 노을 깃들면, 온통 밥 타는 냄새 진동하는 노루지의 하늘 바람 불 때마다 작은 꽃 속에서 밥상 차리는 소리 들려와 왱왱거리는 시절들 불러다 밥을 먹인다 공동묘지 하나 지나야 갈 수 있는 무덤 속보다 먼 마을 누가 저 밥불 좀 줄여줘 *옛살라비:'고향'의 순우리말. **노루지:전북 부안군 부안읍 하서면 노곡리를 일컬음. 낙마(落馬) 메시지 더 싱싱한 연애를 위해 식솔들을 다 떠나보낸 겨울 나무 중심에 굵은 수맥이 흐르고 있다 어느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도 온몸이 욱신거렸으나 치열하게 살아 있기 위해선 무언가 한 가지쯤은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했다 여전히 두근두근 숨쉬고 있는 옆구리를 뚫고 지나간 애벌레의 두근거림 처음 여자를 알았을 때처럼 전신을 관통하는 듯한 전율이 나를 마지막 잎새로 남겨두었다 있는 힘 다해 푸르렀던 한때 바람이 귓불을 간질일 때면 우주 전체가 내 안에서, 눈부신 황금나비의 날갯짓으로 서로 짝을 맞춰 치달아 오르던, 한때는 어떤 애인도 부럽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맨 처음부터 내 몸속에도 불길한 전운이 감도는 수맥이 흐르고 있었던 것인데 고통의 밑바닥을 애써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을 뿐 이제 제 뿌리가 가늠할 수 있는 곳까지만 가지를 뻗는 겨울 나무를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행복했다 손을 놔버리는 그 순간이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가 새싹이 돋는 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