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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엔 바람의 세월이 실려있다
휘수 Hwisu
2006. 8. 1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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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엔 바람의 세월이 실려있다 [여행신문 -
2004/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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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냄새가 나는 제주 사진이 있다. 어디 바람 냄새뿐인가, 이 사진들 속에는 제주의 향기로움과 수많은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사진작가 김영갑. 그의 사진은 어디에 놓아도 단박에 눈길을 끈다. ‘김영갑표 사진’은 사진을 좋아하든
않든, 제주를 사랑하지 않든 간에 사진과 제주를 다시 보게 만들어 주는 기쁨을 선사한다.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1985년 홀홀단신 제주도에 내려와 20여 년 간 그 곳에서 묵묵히
사진을 찍어왔다. 밥 먹을 돈은 없어도 필름 살 돈은 항상 넉넉했다는 그.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제주도에 대한 사랑이, 사진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 극진할 수도 있는 것인가. 김영갑의 제주도 생활은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반한 것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었고 또한 도를 닦는 구도자의 길이 아니었던가. 제주도에 정착한 이후 20여 년 간 그 곳에서 묵묵히 사진을 찍어온
그에게 아직 찍지 못한 제주도의 모습이 과연 있을까.
아름다움은 곧잘 비극을 동반한다. 5년 전 그는 ‘루게릭 병’이라는 불청객을 맞았다. 김영갑의 제주를 향한 ‘소름끼치는 그리움’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아프고 점차 근육이 굳어가는 ‘루게릭 병’ 속으로 잦아들었다. “이제 막 사진이 무엇인지, 어떻게 찍어야할 지 알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그의 절규는 가슴을 파고든다.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고통이다. 웃어도 울어도 통증이 깊어진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이것인가 억울했다. 그가 그
아픔과 억울함을 잊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다. 폐교였던 옛 삼달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두모악(한라산의 옛 이름).
사람들은 이 곳을 제주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제주도의 내면을 보기가 그렇게 힘든 것일까. 두모악을 찾아가는 길은 녹녹하지 않다. 친절한 길안내를 받고 가더라도 갤러리 앞을 너댓 번
헤맨 후에야 겨우 손바닥만한 ‘김영갑 갤러리’라는 문패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사진보다는 제주도의 내음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진한 흙냄새와 풀냄새, 거기에 묵직한 돌 냄새까지. 운동장에 만든 너른 정원의 꽃과 흙들이 비를 맞는 날이면 그 색과 냄새를
더욱 진하게 풍긴다.
그의 다정다감함이 느껴지는 흙으로 빚은 토우와 층계에 앉아있는 돌 인형. 산수국 틈에 숨어서 기다리는 인형들을 따라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그리고 한 걸음. 도저히 폐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탄생한 그의 새하얀 갤러리에는 그의 카메라 렌즈에 잡혔던 사진들이
걸려있다. 제주도의 봄·여름·가을·겨울, 제주도의 만남과 사랑과 아픔과 실연.
특히 같은 오름을 바람 부는 날, 저녁 노을이 있을 때, 아침 이슬을 담을 때 등 각각 다른 시각에서 다른 빛깔로 그려진 그의 사진들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만든다. 그만의 독특한 파노라마 사진은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묘한 느낌을 안겨준다. 그가 직접 고른 갤러리 안의 현무암들은
사진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소품이다.
갤러리에 오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서 오감(五感)으로 제주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그다운 배려다. 두모악과 그의 대한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퍼져나가 하루 평균 100여명이 찾기도 힘든 두모악에 들른다고 한다. 두모악을 찾는 날, 운이 좋다면
그를 직접 만날 수도 있다. 몸이 허락하는 한, 대부분의 시간을 그는 갤러리에서 보낸다. 손바닥만한 창으로 제주와 그리고 그를 보기 위해 온
이들과 언제나 소통하고 있다. 갤러리에서 그를 보게 된다면 눈인사를 건네 보자. 가슴이 촉촉해지는 그의 화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제주가 아름다워 제주에 눌러앉았다는 김영갑. 그러나 이제는 그가 제주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인터넷 갤러리
두모악(www.dumoak.co.kr)에서도 만날 수 있다. 064-784-9907
채지형 객원기자
출처, 두모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