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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북소리> 서평, 이청람 선생님 글입니다

휘수 Hwisu 2019. 5. 19. 15:03


[시집 읽기]

 

-휘수시인의 시집 [구름-북소리]-

 

쓰는 일, 그것은 인간의 업무 가운데 가장 죄 없는 일 이라는 詩的 담론의 한 名句를 서구의 한 지성이 선점한 바 있다 '가장 죄 없는 일' 그것은 물론 '가장 순결한 일' 이라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의 미아 같은 한 작은 행성의 창변(窓邊)에서 를 생각하고 존재의 고독과 실존적 삶의 진실을 예술적 감각으로 형상화한다는 운명적 실재는 숭고한 것이다 우주는 점 하나로 기억되기 어려운 인간을 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미미한 인간은 은하를 관찰하고 우주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질료와현상과 운행 질서를 알아내고 더 깊고 은밀한 곳까지 탐색해 가고 있다. 우리는 이 지상의 풍경과 삶의 현상 속에서 보다 위대한 것이 있다는 생각,발언,언질,그런 것들이 를 위대하게 하고,우주의 한 작은 창가에서 쓰는 행위를,인간의 업무 가운데 가장 결백하고 값진 것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詩集을 처음 펼치면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버릇이 있다. 이 집의 외관이나 풍채나 풍수지리는 어떨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이 집에서 민박을 청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 나는 언제나 과객일 뿐이고 이 집에 입주할 용의는 없다. 대체로 의 집은 싱겁고 무심하고, 뚱딴지가 많이 놓여있고 돼지감자꽃도 있고 그렇다. 개성적인 한 집이라면 건축설계나 정원이나 뒤란의 차림들도 있겠으나, 한 그루씩의 나무 위아래를 훑어본다. 음흉한 눈빛으로 미인을 감상하듯이. 어쩌면 이 집 장맛은,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어쩌고 뒤죽박죽의 맛이 신묘한 새맛일 수 있으나, 그저 문채(文彩) 맛으로 일독하고 접는다. 어쩌다 맞춤한 상황에서 어떤 문장은 등골에 식칼을 들이댈 것이다. 어쩌다 눈빛이 마주치면 정분날 문장도 생길 것이다. 어쨌든 詩集을 이리저리 굴러다니게 하고 또 어쩌다 집어 눈길을 잡아채면 코끼리 발톱을 갉아 먹는 쥐처럼 치명적인 곳을 뜯어먹고 싶다. 문장을 다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손금 몇 줄 얹어줄 어느 페이지의 쿨렁거림을 위해서.

 

여기,잘근잘근 갉아 먹고 싶은 한편 소개한다

 

 

배고프다 너를 읽고 싶다 소라껍데기를 바다에 던지며 동그란 소원을 그린다 늙은 바다는 시종(始終)의 배후 익히 안다는 듯 지루한 하품 뱉어 내지만 오래도록 흔들리는 것은 외따로 있다 발밑에서 지워지는 길 어느 방향에서나 너의 향기는 물거품처럼 일어나고 한 발자욱 내딛는 곳,그곳이 또 너에게로 가는 길인지도

 

너를 읽는다 왜 치명적인 오독은 사소한 어긋남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왜 딱지의 두께를 우려하는 내상의 오독은 오랜 긍정 후에야 드러나는 것인지 왜 그렇게 하앟게 시치미를 떼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 우기가 바다에 내려앉을 때 소나기처럼 달려드는 너 재독을 권하는 건가, 몹시 떨리우면서도 불온해지고 싶다

 

너를 읽어도 배고프고 읽을수록 배고프다 새벽에 부스스 일어나 눈도 못 뜬 체 손에 닿는 것은 모두 입에 쑤셔 넣다가 쓰러지고 파도 소리에 일어나 입안에 남아 있는 씁씁한 찌꺼기를 밷어내며 혼잣말한다 배고프다 두리번거리며 너를,

답이 수없이 많은 너는 누구인가,나는 오늘도 수없이 밑줄을 긋는 것이다

 

[, 밑줄을 긋다] 전문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