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 김수우
고등어 / 김수우
온몸이 컴컴한 골목들로 빽빽합니다 지치지 않는 길과 창문과 얼굴이 서로 마주해 자작나무처럼 자란 저, 무늬들
샛길 하늘을 얽어놓은 전깃줄도 보입니다 알전구가 흔들리면 선반에 일년내 피어있던 프라스틱 패랭이꽃도 슬쩍 흔들립니다
팽팽하던 길, 구불구불 몸속으로 기어들 때 비로소 한 마리 고등어로 돌아 올 수 있음을 알았으니
애초 등푸른 생선으로 팔린 내가 다시 푸른 등짝으로 도착합니다 두고온 길들, 내버린 길들, 몸속에 가둔 벼랑이 뒤척이는데, 이천 원에 팔리는 한 마리 슬픔, 눈이 붉어옵니다 왁자한 파도들 익숙하고 낯설어
낮게 낮게 시장통 좌판에 물끄러미 누울 수 있을 때까지 내가 걸어야 할 바다, 매일 토막을 냅니다
계간 <시향> 2008. 봄호
김수우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문학을 꿈꾸다 늦깎이로 詩의 길에 들어서면서 1995년 <시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한 후 자신의 사랑과 문학에 열심이다. 서부 아프리카의 사하라, 대서양의 카나리아섬(스페인령)에서 십여 년을 살다 돌아와서, 대전에서 십 년 가까이 지내기도 했다. 이십여 년 만에 귀향했으나 지금도 틈나는 대로 여행길에 오르는 자칭 떠돌이별이다.
그는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하고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여긴다. 인간은 가장 비린 삶의 현실 속에 가장 붉은 비늘을 입고 있는 무한한 존재라고 믿고 있다. 뒷걸음질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김수우 시인은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 자유를 배우는 일에 오늘도 용감하다.
저서로 시집 길의 5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가 있고
사진에세이집 하늘이 보이는 쪽창, 지붕 밑 푸른 바다, 아름다운 자연 가족이 있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