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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밤의 백합화 / 손순미

휘수 Hwisu 2008. 10. 8. 12:15

검은 밤의 백합화 /  손순미


공중변소 다녀오는 밤길에 

그것은 피어 있었다

나팔 같은 주둥이, 아니 가랑이

그것은 지루한 여름밤을 나팔분다  

나는 변소의 추억을 지우려 그것을 끌어당겼다

별이 지고, 비가 올 것인가

내가 누고 온 그것처럼

그것의 가랑이는 숨 막히다

애인에게 버려진 지 오래인 여자의 음부처럼

그것은 독한 향기를 흑흑, 울어댄다

버려진 것의 냄새는 어둡다

사람들은 그것의 가랑이에다 대고

향기를 포식할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밤

바람이 그것의 향기를 끌고 가는 소리

그것의 울음을 끌고 가는 소리  

나는 더 이상 그것의 폐경을 보고 싶지 않다

 

 <시와문화> 2008. 가을호

 

  

  1964년 경남 고성 출생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현대시학으로 등단

  2008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