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검은 담즙 / 조용미

휘수 Hwisu 2007. 5. 26. 07:00

1962년 경북 고령 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1990년 한길문학에<청어는 가시가 많아>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1996년 실천문학사)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2000년 창작과비평사)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2004년 문학과지성사)
제16회 김달진문학상

 

검은 담즙 / 조용미

가슴 속에서 검은 담즙이 분비되는 때가 있다 이때 몸속에는 꼬불꼬불 가늘고 긴 여러 갈래의 물길이 생겨난다 나뭇잎의 잎맥 같은 그 길들이 모여 검은 내, 黑河를 이루었다

黑河의 물줄기는 벼랑에서 모여 폭포가 되어 가슴 깊은 곳을 가르며 옥양목 위에 떨어지는 먹물처럼 낙하한다

폭포는 검은 담즙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의 죄는 비애를 깃들이려 한 것이다 生의 단 한순간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비애는 그을린 태양 아래 거칠고 긴 숨을 내쉬며 가만히 누워 있다

쓸개물이 모여 生을 가르는 劍이 되기도 하다니 검은 폭포 아래에서 모든 것들은 부수어져 거품이 되어버린다 거품이 되어 날아가는 것들의 헛된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수 있을까

비애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너의 죄는 비애를 길들이려 한 것이니 幻이 끝나고 滅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삶은 다시 시작되는 것을 담즙이 모여 떨어지는 黑河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지상에서 가장 헛된 것이라 부르겠다

지상에서 가장 헛된, 그 아름다움의 이름은 絶滅이다

 

제1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작

 

출처,간이역에이는시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