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건물의 구조 / 정은기
휘수 Hwisu
2008. 8. 23. 09:52
1979년 충북 괴산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석사과정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차창 밖, 풍경 빈곳' 당선
건물의 구조 / 정은기
철거 직전의 유치원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창문 너머에서 풍금 소리가 들려
나는 밤마다 돌을 던지고 도망친다
건물이 키워 온 균열들이 가지를 뻗는 소리
무성하게 잎을 틔우며 틈을 벌리고 섰다
바람의 힘을 받아 뒤척일 때마다
균열들은 지붕 위 안테나와 악수할 것이다
수런거리며 자리를 바꾸는 잎사귀들이
유리창 속으로 긴 복도를 걸어다니고
보도블록이 앞장서 뒤란으로 돌아갈 때
시간은 허공의 잘록한 허리를 갉으며 균열을 찾아 스며든다
제 자리에 뿌리를 박아
지는 해를 따라갈 수 없는 저 건물
바다 속으로 던져진 투망처럼
균열을 덮어 쓴 채 웅크리고 있다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 모든 것들은
움직이려 할 때마다 소리를 내는 것이니
블라인드 깜빡이며 내부를 훔쳐보는 유리창 너머,
삶의 거처가 놓일 때까지 기둥이 화해하는 방식은 늘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었다
균열이 우거져 울창해지는 저녁 숲으로
풍금 소리 퍼득거리며 날아오르고
나는 밤마다 돌을 던지고 도망친다
열린시학 2008년 여름호
출처, 푸른시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