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읽고싶은글

거짓말 하지 않는 사진 / 한영신, 자유기고가

휘수 Hwisu 2006. 8. 6. 00:36
함경북도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여정 중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을 조사하고 있는 장면. 1906년 9월 촬영.
▲ 함경북도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여정 중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을 조사하고 있는 장면. 1906년 9월 촬영

6.25와 8.15를 품고 있는 여름은 날씨로 인한 희비의 교차가 평범치 않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오랜 일제 강점기에 종지부를 찍은 1945년 광복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50년 6․25. 그리고 반쪽의 역사는 환갑을 넘어섰고, 여전히 회환을 풀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여름, 우리 민족사의 파고가 가슴을 파고드는 두 전시가 있다.

주일 독일 대사관의 무관 헤르만 산더의 2차 세계대전격전지에 대한 일종의 첩보 사진들과 기록을 보여주는《국립민속박물관 기증사진전-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여행, 1906-1907 한국·만주·사할린》(6. 14-8. 28), 일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기록한 대한제국 황실 사진들을 소개한《서울대학교 박물관 사진 특별전-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5. 31-8. 19). 두 전시는 전후세대인 우리에게 우리 역사의 골골을 그저 역사적 수순으로만 기계적으로 접해오지 않았던가 스스로 묻게 한다.

 

르포르타주와 시선, 객관성에 대한 경계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구한말 그리고 일제 강점기. 그 시절 우리 민족의 모습을 담은 시각적 자료들은 대부분 타자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 타자의 시선에 의한 기록들을 소개한 이전의 인상적인 사진전들도 있다. 현재는 그 사진전과 함께 발간됐던 자료 사진집들을 통해 만날 수 있다.

1930년대 일본의 조선 현지 조사 사진들을 엮은『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유리 건판 사진집-그들의 시선으로 본 근대』(2004, 눈빛), 일제가 식민지 어류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조사 기록한『유리판에 갇힌 물고기-한국근대어류학과 어류사진아카이브』(2004, 중앙대 DCRC)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 타자의 시선에 의한 6․25 전후의 기록 사진도 찾아볼 수 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의 8․15에서 6․25 관련 사진 자료들을 발굴해 두 권으로 묶어낸『지울 수 없는 이미지』(박도 엮음, 눈빛)와 독일의 건축가로 북한 건설단에 배속됐던 에리히 로베르트 레셀이 기록한『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50년대의 북녘, 북녘 사람들』(2000, 효형출판) 등이 인상적이다.

항구에서 보이는 일본인 거주지와 한국인 거주지역

모두 타자의 시선에 의한 우리 근대사의 기록으로, 르포르타주 형식을 취하고 있다. 르포르타주는 사실에 입각해 사회 현상을 충실히 기록 보고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기록들에는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비판 정신을 갖춘 르포르타주의 특징을 발견하기는 다소 어렵다. 각기 다른 이해와 목적을 가진 타자의 시선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의 기록은 대한제국의 일제 식민지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식민지 수탈에서 최고 효율을 내기 위한 자료 조사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일제에 의한 르포르타주의 객관성은 한쪽 측면만을 부각시키면서 왜곡됐다. 조선의 못난 부분만을 강조한 것이다. 

일제 외에 서구 열강이 조선과 대한제국에 대해 기록한 사진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개발과 확장을 위한 자료 조사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첩보 사진은 일제의 기록과는 달리, 중립적 시선을 엿볼 수도 있다. 일본에 항거하기 위해 철로를 부순 한국인들을 사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 해골이 뒹구는 안주 외지의 사진이 중립적 시선의 한 예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참혹한 사진을 일제는 직접 기록해 공포 정치의 효과적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에 유통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르포르타주, 객관성의 변증법

개조된 인정전 행각 내부로 연회 참석자들을 위해 우산꽂이와 옷걸이 설치된 모습

어느 학자는 ‘나폴레옹은 1969년에 태어났다’는 기술은 객관적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정답은 각자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런 의문을 제시해볼 수 있다. 객관적인 듯 보이는 표현에도 표현 주체의 시선과 사고가 묻어나기 마련이고, 기록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것. 

가령 호칭에서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황제, 나폴레옹 장군 등의 명명에는 개인과 집단, 시대의 시선이 반영된다. 연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임금들이 개혁을 할 때 한 나라가 망하고 새 나라가 세워질 때 이루어지는 작업 중에 하나는 새로운 연호의 천명이다. 연호의 사용에는 힘의 우위가 작용하는 것이다. 또 ‘태어났다’, ‘탄생했다’ 등의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는 낱말의 선택에도 관점이 담겨진다.

그러나 기록은 기록하는 자의 관점이 담겨지는 것에서만 갇히지는 않는다. 기록을 해석하는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의 르포르타주적 기록의 힘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때 더욱 빛이 난다. 당시 일본이 공포 정치 목적으로 유포한 식민지 지배자의 힘을 보여주는 사진은, 일제 강점기의 참혹성을 증거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진과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기록에서 나타나는 한국 거주 일본인들의 풍요로움과 한국인들의 남루함의 적나라한 대비는 또 어떤가. 이들은 모두 역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대외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상반된 힘을 발휘한다.

일제의 조선 권력 무력화를 위한 상징적 기록인《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에서도 그런 역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속에는 일제에 의해 호텔의 연회장처럼 변모된 대한제국의 궁궐, 일제가 주관한 고종의 장례식 풍경, 조포 발사를 명분으로 인천항에 정박한 대형 군함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러한 사진들은 제국주의의 침탈이 어떠한 것인지 거짓 없이 보여주고, 황국신민 운운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자기모순을 명백히 드러낸다.

한나라의 국왕이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는 인정전이 일제에 의해 연회를 위한 공간으로

변질된 모습


하지만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격동기의 역사에 대한 우리 시선의 사진 기록이 거의 부재하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안타깝다. 그래서 당시 여러 외국인들에 의한 다양한 사진 기록들을 발굴, 소개하려는 노력들이 반갑다. 다양한 시선의 교차 속에서 우리의 한 시대를 더 입체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차대조 속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이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건 자칫 표면에 보이는 것 안에 안주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너머 과장된 추측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는 근거를 찾아가는 일이다.  


르포르타주에 의한 사건의 사진적 기술이란 명확한 주제에 따른 소재의 아우름으로 출발한다. 이때 연도와 장소는 제반 사진 관련 문자 기록의 기본이다. 사진의 그러한 원칙은 육하원칙과 드러난 의도 너머의 진실에 대한 역추적을 가능하게 해준다. 일제가 사진적 르포르타주를 선택한 건, 최대한 만인이 공유하는 제반 사실의 시각적 구현에 충실함으로써 메시지에 대한 설득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식민지 지배 야욕은 감춰질 수 없이 드러나고, 찍는 자의 의도 너머의 진실들을 읽어낼 수 있게 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당연한 사진의 특성이다.

 

나의 스승은 언제나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변형과 혼재가 용이해 사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면을 가진 디지털 문명. 그 디지털 시대를 사는 나는 그 말씀에 회의하곤 했다. 그런데 100여 년 전쯤의 과거 타자의 왜곡된 시선이 담긴 아날로그 사진 자료들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을 접하면서, 스승의 믿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단초를 발견했다. 사진의 특성을 지켜가기 위한 기본 원칙들, 아날로그적인 가치들, 사진가 정신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과학의 이기, 디지털 문명을 효과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람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흔한 비유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출처, 컬쳐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