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詩모음

ㅎ방직공장의 소녀들 / 이기인; 건봉사 불이문 / 이덕환

휘수 Hwisu 2006. 2. 21. 22:49

 

이기인

1967년 인천 출생
1986년 인천 제물포고 졸업
1988년 서울예술대학 졸업.

 

 


ㅎ방직공장의 소녀들전복의 시선을 통해 부정의 부정을 거쳐 도달한 따뜻함이 아니라면 감동 대신 무기력을 낳을 뿐이다.

 

 

 


ㅎ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  
목화송이처럼 눈은 내리고
ㅎ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따뜻한 분식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제 가슴에 실밥
묻은 줄 모르고,
공장의 긴 담벽과 가로수는 빈 화장품 그릇처럼
은은한 향기의 그녀들을 따라오라 하였네
걸음을 멈추고
작은 눈
뭉치를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묻지도 않은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늘어놓으면서 어느덧
뚱뚱한 눈사람이 하나 생겨나서

어린 손목을 붙잡아버렸네
그녀가 난생 처음 박아 준 눈사람의 웃음은 더 없이
행복해 보였네
어둠과 소녀들이 교차하는 시간, 눈꺼풀이 내려왔네
ㅎ방직공장의 피곤한 소녀들에게
영원한 메뉴는 사랑이 아닐까,
라면 혹은 김밥을 주문한 분식집에서
생산라인의 한 소녀는 봉숭아 물든 손을 싹싹 비벼대네
오늘도 나무젓가락을 쪼개어 소년에 대한
소녀의 사랑을 점치고 싶어 하네
뜨거운 국물에 나무젓가락이 둥둥
떠서, 흘러가고 소녀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 갔다고 분식집 뻐꾸기가
울었네
입김을 불고 있는 ㅎ방직공장의 굴뚝이,
건강한 남자의 그것처럼 보였네
소녀들이 마지막 戰線으로 총총 걸어가며 휘파람을 불었네.

 

 

 

건봉사 불이문 / 이덕환



두 개인 듯 하나로 보이는 구름 한 조각 금강산과 향로봉에 걸쳐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건봉사 불이문에 들어선다

부처님 치아사리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불상이 없고 계곡 건너 금강산 대웅전엔

부처가 환하다 만해(卍海)의 뜨거운 발자국이 보일 듯 돌다리를 경계로 금강산과 향로봉

이 포개진다

같고 다름이 하나인데 이 곳에는 모두가 둘이라니 민통선 철조망이 반세기동안 녹슨 풀섶

에서 가람을 두르고 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독경 소리가 풀향기에 섞인다 깨진 기왓장에

뒹구는 낡은 이념들 초병들의 군홧발 자국 절마당에 가득한데 목백일홍나무에서 떨어지는

자미꽃의 핏빛 절규는 나무아미타불탑 위의 돌봉황에 실려 북으로 가는가,갔는가

적멸보궁 터진 벽 뒤로 날아가는 하얀 미소를 보며,아내와 난 보살님이 준 콩인절미를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


'불이문'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상상력이 맴돌고 있어서 깊이 있는 감동을 끌어내지는 못한다.
따뜻함은 분명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따뜻함이라는 무기는 다루기가 어렵다. 삶에 대한 치열하고 예민한 정신의 열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따뜻함은 온정주의에 그치기 쉽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긍정하는 게 따뜻함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심사평 : 김규동 , 문정희]

작품 수준으로 보면 대여섯 명이 비슷하다.그런데 ‘건봉사 불이문(乾鳳寺不二門)’이 취해진 것은 현실적으로 그나마 진취적이라는 인상 때문이다.이 시는 기술면에서 보면 그렇게 새로운 점이나 무슨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노래가 듣기에 개운하고 또 한편 침통한 맛을 전해주니 이것은 이 작자가 구사하는 작품의 비결이 아닐까한다.
결국 하고자하는 말은 인간무상이나 그렇더라도 이 시가 풍기는 멋은 매우 세련되어 있다.좀 더 적극적인 현실참여,혹은 역사적 실천의 사상적 배경이 뒤에 묻어나왔더라면 아마 이덕완은 큰 시인 소리를 장차 듣지 않을까.

삶의 진실과 체험!그것을 더욱 돈독히 할 것을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