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유지소 시모음 본문
경북 상주
2002년 「시작」 신인상
시집 <제4번 방
> 2006년 천년의시작
화장(火葬)
당신이 세상에서
취소되고 있다
굴뚝의 검은 입으로 당신의 비밀스런 기억들이 올올이 풀려나가고 바람은 커다란 지우개를 밀고 다니며 당신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린다 지상에는 비 내리는 오후가 시작되고 당신의 시간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마지막 식탁에 올린 내 살갗 벗겨진 마음을 당신은 먹었는가
떡갈나무가 젖은 손으로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린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시집 <제4번 방> 2006년 천년의시작
염전
땡볕이다 철판은 달아오르고 낮은 섬 하나가 빵처럼 부풀어오른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너무 먼 당신이 목마르다 수차에 휘감겨 도는 기차 포도밭 소라고둥 알 수 없는 중얼거림 당신의 투명한 언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당신은 종종 나를 잘못 쓰고 있다
땡볕에 서서 나는 당신을 증발시킨다 딱딱하게 굳은 적막을 뜯어먹으며
나비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허물이 없다. 그래서 당신과 나 사이에는 허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나비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나비를 낳을 수 없다.
나비에 대해서 말하자면, 석달 열흘하고도 열흘은 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허물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사전적 의미로 허물은 -살갗의 꺼풀-이라고 말하지. 허물은 -잘못, 실수, 과실-이라고 말하지.
입술을
둥글게 오므리고 당신의 귓바퀴를 굴리며 말할 때는 -흉-이라고 하지 -흉-.
1령 애벌레의 허물이 2령 애벌레를 낳고, 2령 애벌레의 허물이 3령 애벌레를 낳고, 3령 애벌레의 허물이 4령 애벌레를
낳고, 4령 애벌레의 허물이 5령 애벌레를 낳고,
5령 애벌레의 허물이 번데기를 낳고, 번데기의 허물이 나비를 낳고,
……,
……나비는 알을 낳고,
나비는 알을 낳고,
알의 허물이 1령 애벌레를
낳는다.
허물을 따라갔는데, 나비는 허물을 벗지 않는다. 나비는 번데기의 허물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번데기의 허물을 자기의
허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어른은 성장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어른은 허물이 생겨도 벗을
줄을 모른다.
애벌레는 허물의 힘으로 자란다. 허물을 벗는 힘으로 자란다. 아니, 허물을 먹는 힘으로 자란다.
갓
태어난 애벌레의 맨 처음 식사는
자기가 방금 벗어 놓은 그 허물.
그래서 애들은 허물이 많아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어젯밤에도 허물을 낳았다. 그래서 당신과 나 사이에는 너무 많은 허물이
있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허물을 키우는 힘으로 산다. 허물이 커질수록 우리는 나비처럼 가벼워진다,
나비 나 ·飛 / 나 ·非 /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