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송기원 시모음 (펌) 본문
안개꽃
이제 알겠지.
발아래 뿌리기 시작한
새벽안개가
네
비틀거리는 길을 지워버릴 때
주정뱅이로 객사한 아비와
술집작부로 평생을 떠돈 어미가
네 지워진 길 위에 다시 살아올
때.
이제 비로소 알겠지.
간밤에 네 속살 깊은 곳을 비집고 들던
한 사내의 살기와 굶주림이
뜬금없는
새벽안개로 피어올라
네 늦은 귀가를 막아서는 이유를.
찔레꽃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어질머리 흔들리는 봄날 저녁이면
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그런 지경에서
꿈결같이 사람 냄새를 맡곤 하엿습니다.
한 번 돌고, 두 번 돌고, 또다시 도는
그런 산모롱이 아래 아늑한 곳에서는
개 짖는 소리. 된장국 냄새. 밥 짓는 연기 속에서
마을의 불빛들 하나 둘 밝게 켜지고
처음부터 어려운 길인 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대를 잊는 일이 하도 깊어서
갈 길도 돌아설 길도 모두 어둠 속에 묻혀버릴
때
그대 대신에 느닷없는 수천수만 찔레꽃 송이들
무언無言, 무언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렇게 그대 대신에 피어올라서
돌아설 한가닥 외길 비추어주었습니다.
참꽃
이런데 있은지 스무 해가 넘음시롱
뭔일이까잉. 열여덟 처녀적 나가
꼭 활동사진맨키롱 떠올르곤
해라우.
낮이먼 콩밭 매고 밤이먼 미영 감고
마실 총각들만 봐도 앵두알맨키롱 얼굴부텀 빨개지던 나가
뭔일이까잉. 그렇게
이삐고 환해서
늙은 가심이 다 콩당콩당 뛴당께요.
고향 떠날 때 불타오르던 앞산 참꽃도
그렇게 이삐고 환허지는 못할
거이요.
그런 날은 다 늙어 손님을 받는 일도
벨스럽게 부끄럽지는 않어라우.
바람꽃
단 하나 부족하여 너를 더듬게 하던 것이,
단 하나 부족하여 너를 등지게 하던 것이,
단 하나 부족하여 너를……
복사꽃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다 말고
사립문을 뛰쳐나온 갓
스물 새댁,
아직도 뚝뚝 젖이 돋는 젖무덤을
말기에 넣을 새도 없이
뒤란 복사꽃 그늘로 스며드네.
차마 첫정을 못 잊어 시집까지
찾아온 떠꺼머리 휘파람이
이제야 그치네.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중에서)
[송기원]
이름 : 송기원
(宋基元)
출생 : 1947년 7월 1일, 전라남도 보성
학력 :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약력 :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회복의 노래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경외전서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후반기의 노래
196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불면의 밤에
대표작 : 또 하나의 나, 사람의 향기, 청산,
아름다운 얼굴
수상경력 : 2003년 제11회 대산문학상, 2003년 제6회 김동리문학상
2001년 제9회 오영수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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